내 아버지 최병렬 장로(2011년 작고·오른쪽 세 번째). 사진은 ‘김포비행장교회’(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성교회) 청년부 형제들과 함께한 것으로 1955∼56년쯤으로 추정된다. 부모님은 58년 결혼했다.
아버지는 황해도 황주 분이셨다. 아버지는 6·25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후퇴 당시 온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월남 후 군입대한 아버지는 지리산 잔비 토벌에 나섰다가 군용차가 뒤집히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군 병원에 입원, 투병하다 제대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주일학교를 잠시 다닌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는 못하다가 군병원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제대 후 아버지가 정착한 곳은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이다. 지금 서울 강서구 방화동이다. 남쪽으로 피란할 때는 가족 중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시 만나 보니 다들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다니던 교회가 김포비행장교회이다. 20여년 전 작고한 고모 최용주 권사가 그 교회 첫 세례교인이다. 교회는 월남 크리스천들에 의해 51년 9월 김포공항에 주둔하던 미 공군 군인교회예배당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송정초등학교 교실에서 예배가 이어졌다. 미군 폐막사 자재로 송정초교 뒤에 첫 예배당이 봉헌됐다. 이 장소가 현재 대성교회 자리이다.
아버지는 한의사와 목사가 되기를 바라고 공부를 시작하셨지만 허리디스크 등 고질병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십몇 년 동안 교회 사찰(관리집사)로 생계를 이어가셨다.
아버지는 60년대 영등포구 영은교회 사찰이었다. 그 교회 초대 담임이 박조준 목사다. 나는 박 목사님으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박 목사님이 서울 영락교회로 가시고 몇 년 지나 아버지는 다시 모교회로 오셨다. 그리고 74년 장로가 되셔서 25년간 시무장로로 교회를 섬겼다. 심방을 담당하는 ‘총무장로’로 평신도사역도 하셨다.
◇필자=1962년 서울생.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인천 경희생명수한의원장. 서울 광화문 하늘샘교회(김한원 목사)를 섬긴다.
[사진, 話하다] 가족의 믿음 씨앗된 ‘김포비행장교회’
입력 2016-01-24 17:50 수정 2016-01-24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