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국수 열 그릇

입력 2016-01-24 17:28

주정차위반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도로교통법 32조, 33조, 34조와 도로교통법 160조 3항 질서위반행위규제법 16조라고 적힌 관련법규에 의해 부과됐으며 단속구분은 CCTV이고 위반장소는 동양공인중개사 주변. 과태료는 4만원.

자진납부를 하고 20% 감경적용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의견진술을 하러 구청 교통관리과를 찾아갈 것인가 잠깐 고민했지만 증거로 제시된 CCTV 사진은 나의 질서위반행위를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었으므로 깨끗이 수긍하는 쪽을 택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정리했으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두 가지 정도의 이유에서다.

최강 한파가 연일 계속되는 겨울. 밥도 먹지 못하고 야근을 하다가 지쳐 돌아오는 춥고 늦은 귀갓길 한적한 동네 골목길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으러 갔던 내 사정은 교통관리과를 찾아가 사정을 말한다 해도 사전진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거란 예상과 과태료 부과 통지서 속에 함께 찍힌 SUV차량은 CCTV에 자동차번호판이 찍히지 않는 각도로 주차를 해서 과태료 통지를 받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분명 CCTV 촬영 사진은 두 대의 차 모두 질서를 위반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지만 CCTV의 사각지대를 알고 있었던 그 SUV차량 주인과 배고픔을 면하려고 국수 한 그릇 먹으러 갔다가 국수 열 그릇 값의 과태료를 부과 받은 내 처지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라는 것. 어떤 시인은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지구에 돈 내러 왔나?

연말정산 시즌이다. 탈세를 하자는 게 아니라 절세를 하자는 것이라며 그 복잡한 연말정산 증빙서류를 꼼꼼히 챙기던 P가 떠오른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알아야 절세도 하고 알아야 재난도 대비할 수 있다. 국민안전처의 한파경보 긴급재난문자가 날아드는 이 겨울 내가 낸 돈이 부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국수 한 그릇의 따뜻함으로라도 전달됐으면 좋겠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