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강주화] 방드르디

입력 2016-01-24 17:30

최근 별세한 프랑스 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첫 작품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이다. 방드르디는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를 재해석한 소설이다. 태평양 페르낭데즈 군도에서 4년 넘게 혼자 살다 1709년 발견된 선원 알렉산더 셀크렉이 로빈슨의 실제 모델이다. 디포의 로빈슨은 섬에서 만난 원주민을 하인으로 부린다.

로빈슨은 금요일에 만난 이 원주민을 프라이데이(Friday)라고 부른다. 투르니에의 로빈슨은 원주민 방드르디(Vendredi·프랑스어로 금요일)에게 문명을 전수하려다 큰 화재를 겪은 뒤 포기한다. 대신 방드르디를 따라 낮잠을 자고, 일광욕을 즐기고, 수염을 기른다. 로빈슨은 “모두 슬퍼서 우, 우 비가 온다”는 방드르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유롭게 산다.

18세기 로빈슨은 군림하지만 20세기 로빈슨은 동일한 인격으로 원주민을 마주한다. 다시 태어난 로빈슨은 과거의 로빈슨을 풍자한다. 계몽주의적 로빈슨을 낳은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타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88년까지 20년 동안 수감돼 있었다. 그는 수감자들과 ‘원시적 우정’을 나누며 인생과 역사를 배웠다.

수감 기간을 대학 시절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서예를 배우던 1977년 신 교수는 옥중서신에서 “묵을 갈 적마다 인(人)과 인(人) 간의 그 뜨거운 연계 위에 서고자 한다”고 썼다. 관계론에 천착한 단면이다. 그는 ‘더불어 숲’이란 말로 연대와 공존의 정신을 강조했다. 신 교수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로부터 답을 얻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은 권위주의 시대 토양에서 자라났다. 당국의 검열을 피해 한 달에 한 차례 정제했던 문장이다. 우리는 그때와 다른 시대를 산다. 그는 생전에 현 세대에게 진보를 위한 집단지성을 주문했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새 공존의 언어가 필요하다. 프라이데이 이후 방드르디가 나온 것처럼.

강주화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