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은 요즘은 쉽게 찾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 즉, 이웃 간의 사랑, 가족의 우애 등을 그려 애틋함을 안겨줬다. 또 하나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당시 경제성장이다. 곳간 속에서 인심 난다고 한다면 드라마 속 훈훈한 장면들이야말로 한국경제 최고 부흥기였던 1988년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 아니었을까. 공교롭게도 현 경제를 둘러싼 여건은 당시와 유사한 3저(저환율 저유가 저금리)이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다. 도대체 왜 1988경제는 지금 응답하지 못할까.
◇단군 이래 최대 호황 가져온 원조 3저=1988년 경제는 3저 호황의 산물이다. 85년 9월 G5(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달러(엔고), 국제금리, 유가가 동시에 하락하는 3저 시대의 막이 오른다.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원화는 86∼88년 달러당 484원에서 885원으로 400원 이상 평가절하됐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9.5달러에서 11.5달러로 추락했다. 수출 위주 산업 구조에 외채 상환, 석유 전량 수입 부담을 안던 한국경제는 날개를 달았다. 또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맞아 진행된 건설 붐과 유통·증권업 등의 서비스산업 활성화는 3저 호황으로 얻은 소득 증대를 소비로 연결시켰다. 85년 7.7%였던 경제성장률은 86∼88년 11.2%, 12.5%, 11.9%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조건은 유사하나 상황은 천지차이인 신(新)3저=2014년부터 서서히 진행된 신3저는 2015년 중반 이후 만개한다. WTI는 2014년 초 95달러에서 지난해 말 37달러로 추락했고 새해에는 20달러대로 진입했다. 원화도 이 기간 100원 이상 가치가 떨어졌고 회사채 금리도 약 40% 하락했다. 그러나 성장률은 2014년 3.3%에서 지난해 2.6%(예정), 올해 3.0%(한국은행 전망치)에 그칠 것으로 보여 저성장의 덫에 걸려 있다.
과거 3저와 신3저 간 상황이 확연히 다른 것은 원인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30년 전에는 석유 과잉 생산과 미국의 엔고 조장 등 정략적 구도 탓에 나타난 면이 강했다. 반면 최근에는 중국 등 신흥국 경기 둔화가 원자재 공급 과잉과 맞물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이끄는 등 세계시장의 수요 부진 요인이 두드러진다. 수출의 58%가 신흥국에 치중되는 우리나라는 신3저의 혜택을 보기 어렵다.
엔저의 부각도 다르다. 원화는 과거 3저 기간 100엔당 202원에서 534원으로 급등해(평가절하) 혜택을 봤지만 2014∼2015년에는 997.44원에서 974.08원으로 오히려 내려가 일본보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경기사이클상 과거 경제 확장기와 최근의 수축기 간 차이, 비정규직 급증에 따른 실질소득 저하, 고령층 증가 등으로 과거 10%대의 고도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22일 “유가 하락으로 줄어든 생산 비용을 제품 경쟁력 향상에 투입하고 가계 소비 여력을 키우는 등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수시장 확대와 블루오션 창출 차원에서 북한과의 경협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응답하라 1988’ 호황의 기억] 꼭닮은 ‘3低’인데… 경기는 딴판
입력 2016-01-2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