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되면 문화재’ 기준 어떻게 (上)] “세탁물 아닙니다” 젊어진 골동품 수난시대

입력 2016-01-25 04:00
서울 종로구 동묘 앞 C골동상 주인 최모씨는 잔뜩 쌓여있는 골동품을 가리키며 “문화재 기준이 50년 이상으로 깐깐해져 해외 유통이 막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한 골동품 가게에 1950, 60년대 제작된 서화가 세탁물처럼 걸려 있는 모습. 작은 사진은 함부로 다뤄 군데군데 깨져 있는 고려청자(왼쪽)와 의재 허백련의 ‘의진팔황’. 허백련 그림(마이아트옥션 제공)은 70년대까지 인기를 누렸지만 동양화가 외면 받으며 값이 크게 떨어졌다.

문화재는 100년은 돼야 한다는 게 통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법으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에서는 문화재 자격을 부여하는 최소 나이를 50년으로 2008년 바꿨다. 문화재 나이가 지나치게 젊어지다 보니 생겨나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미술시장에서는 고미술품 거래를 위축시키는 주범이라는 지탄이 쏟아진다. 정부 내에서도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슬슬 나온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거꾸로 고미술품의 소중함을 잊게 하고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현장과 제도의 문제를 2회에 걸쳐 보도한다.

“50, 60년 된 거는 그냥 중고품이지요. 그게 보물 취급을 당하니, 원.”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동묘 앞. C골동상 주인 최모(78)씨는 가게에 빼곡히 쌓인 반닫이, 맷돌, 항아리, 촛대, 목각상, 약상자, 옛 가구, 글씨, 그림 등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팔리지 않아 쌓여 있는 물건들이다. 그는 “2, 3년 전만 해도 중국 관광객들이 반닫이 등 한국의 옛날 가구를 좋아라고 사러왔다. 그런데 공항에서 압류 당하는 일이 많아지자 요새는 발길을 뚝 끊었다”고 했다.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되면 문화재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문화재보호법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1960년대 초반에 제작된 산업품도 해외 전시를 위해 반출하려면 일일이 정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고령 생존 작가의 청년 시절 작품을 외국에 전시하거나 파는 것도 규제를 받게 돼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100년은 묵어야 했던 문화재의 나이가 이처럼 젊어지면서 고미술시장이 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뻥튀기 기계, 소주병도 문화재?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해외 전시를 위해 문화재청에 전시품 반출 허가신청을 한 적이 있다. 신청대상에는 뻥튀기 기계, 소주병, 일제시대 도시락까지 포함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기준이 50년 이상 된 것으로 규정돼 있다보니 앞으로는 70, 80년대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도 허가 대상이 되는 등 광범위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생존 작가의 과거 작품을 해외에 전시할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한·불 상호교류 전시회 때 단색화로 유명한 박서보(85) 작가가 작품 반출 허가 신청을 한 게 그런 예다. 전시는 물론 매매도 제한을 받기 때문에 외국과의 문화 교류나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속품? 국내선 흔해서 뒹군다

동묘의 골동상 최씨는 “고가구만 해도 1950, 60년대 한옥이 뜯겨지면 거기서 나오는 자재로 많이 만들었다”며 “색이 시커멓게 되면 오래된 건 줄 알고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않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해외로는 쉽게 팔리지 않으니 국내서는 흔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가게 안에 있는 나무 진열장, 목각 인형 등을 가리키며 “이게 다 민속품인데 값어치가 떨어지면서 시골에서는 있어도 그냥 불쏘시개로 쓴다”고 했다.

민화도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19세기 들어 상업부유층의 수요로 등장했던 민화는 50, 60년대까지도 지방 화가들에 의해 제작됐고 집집마다 걸어두던 인기 장르였다. 외국인들도 많이 사갔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는 또 다른 최모(45)씨의 작은 사무실에는 민화, 산수화, 글씨 등이 세탁소의 세탁물처럼 걸려 있었다. 그는 “50년대 그려진 것들이라도 20, 30년 전 10만원 주고 산 것들인데, 지금은 1, 2만원도 안 한다”고 했다. 문화재를 보호하려고 만든 법안이 부메랑이 돼서 민속품이 흔해지게 되면서 무시당하고 훼손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대기 서화가 결정타… 청자도 휘청

문화재 나이가 100년에서 50년으로 축소되면서 결정타를 입은 건 일제 강점기 전후 활동했던 근대기 서화가들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양화보다 인기를 끌었던 동양화는 값이 추락했다. 청전 이상범, 소전 변관식 등 인기 화가는 그나마 정체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의재 허백련, 풍곡 성재휴 등의 작품 값은 대폭락을 면치 못했다. 남농 허건의 작품은 80년대에 비해 반토막이 됐다고 한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고미술품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로도 이어졌다. 국보·보물급의 해외 유출은 규제해야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미술품까지 패키지로 규제당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고 고미술계 인사들은 한결 같이 지적했다.

옥션온 김영복 대표는 “색은 좀 떨어지지만 국화 무늬 등이 상감돼 있는 전형적인 청자 접시라도 10만원대가 수두룩하다”며 “1000년 된 고려청자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런 가격은 1980년대 후반에 비해 10분의 1로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골동상점에서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금 가거나 깨친 고려청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비싼 고미술품

고미술품 시장 위축은 고미술상이 집중됐던 인사동의 몰락이 증언한다. 한옥에서 아파트로의 주거문화 변화, 2002년 인사동의 문화지구 지정에 따른 임대료 상승, 가짜의 유통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문화재 나이를 50년으로 한 문화재보호법 개정 여파가 결정타를 날렸다는 분석도 많다.

동예헌 주인 안백순씨는 “인사동에 고미술상이 200곳도 넘었지만 지금은 20군데도 안될 것”이라며 “90년대만 해도 한달에 10건 이상 매매가 성사됐으나 요즘은 손님이 한 달에 1, 2명 다녀갈까 말까 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비슷한 미술품이라도 한국보다 일본에서 시세가 더 높게 형성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옥션 관계자는 전했다.

‘문화재 최소 나이 50년 법’이란
문화재보호법 제39조는 국보·보물 등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정문화재인 경우, 해외 유통을 금지하고 (전시 등을 위한) 반출할 때도 문화재청 허가를 받도록 했다. 문제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회화, 조각, 공예, 전적, 공예, 고문서 등 이른바 일반동산문화재에 대한 규제다. 문화재보호법 제60조는 이 역시 39조를 준용해 수출 및 반출을 규제한다. 아울러 2008년부터 시행규칙을 통해서 일반동산문화재의 규제 대상을 ‘50년 이상인 것’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했다. 50년이라는 기준은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 기간, 즉 근대기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건설·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경과한 것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