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명나라까지 점령할 야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조선을 제대로 통치하려고 부하들을 여러 차례 다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NHK 방송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21일 도쿄대 사료편찬소가 도요토미가 가신인 와키자카 야스하루(1554∼1626)에게 보낸 슈인조(장군이 자신의 직인을 찍어 부하에게 보낸 공문서의 일종·사진) 33통을 복원·해독했다고 보도했다. 1584년∼1593년 사이 작성된 이들 문서에는 도요토미가 부하에게 내리는 상세한 지시와 질책 등이 담겨 있어 도요토미의 성격은 물론 당시 일본 정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문서에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자신이 직접 바다를 건너 중국 대륙으로 나갈 의사를 피력한 부분과 조선 침공 전황에 관해 상세히 지시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와키자카가 수군을 이끌고 한반도에 침공했을 당시 도요토미가 보낸 문서에는 “장차 명나라까지도 내 지배 하에 두겠다”고 밝혔다고 NHK는 전했다. 도요토미는 또 “3월에 내가 직접 바다를 건널 것이니 기다리라”며 “내년 봄에는 명나라로 건너갈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임진왜란 기간 중에 바다를 건너지는 않았다.
도요토미는 또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부산의 한 성(城)을 함락시킨 사실을 언급하며 와키자카에게도 “빨리 전선에 합류해서 싸워라”든지 “고려국(조선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추정)을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꼼꼼히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무라이 유키 도쿄대 사료편찬소 조교수는 “도요토미가 일본을 통일할 무렵의 자료는 매우 적었다”면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도요토미의 까다로운 성품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문서는 한 신사에 보관돼 오다 1965년에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이를 2014년에 시립 다쓰역사문화자료관이 다시 사들여 1년 넘게 해독 작업을 벌여 왔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明도 지배할 것”… 도요토미의 야욕, 기록으로 확인
입력 2016-01-22 19:10 수정 2016-01-22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