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못 하나가 건물을 지탱하듯 좋은 품성이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이를 소유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무엇이 그 아름다운 건물을 하나로 이어주는가? 그것은 바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나사못이다. 나사못이 없으면 우리는 그 어떤 멋진 건물도 지어올릴 수 없으며 각각의 건축 재료들을 연결할 수 없다.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맨션을 짓고자 하는 한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멋진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자신들이 지어올린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그들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때 나사못에 대한 감사는 없었다. 지붕 위에 있던 작은 나사못은 그들이 자신들의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늘어놓을 때 그 누구도 자신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나사못은 무척 슬프고 원망의 마음마저 들었다. “만약 내가 내 할 일을 그만두어 버리거나 불쑥 뛰쳐나갔더라면 그 누구도 나를 망각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동안 지붕 위에서 자신이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렸고, 이내 진흙더미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쳤다. 땅에 굴러떨어진 나사못은 조약돌에 부딪쳐 날아가고, 지붕에는 물이 새기 시작했다. 벽을 따라 물이 흘러넘치고, 아름다운 벽화들은 망가졌다. 석고들이 떨어져내리고, 카펫은 얼룩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작은 나사못의 부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그들 주변에 머물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들을 친구로 삼고 싶어 하고, 그들을 채용하고 싶어 하며, 그들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품성이 바로 건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나사못과 같은 존재임을 망각한다. 만약 그들에게 나사못과 같은 품성이 결여되면 그들의 아름다운 의상은 더 이상 화려하지 못하다.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매력적이지 않고, 고귀한 향은 더 이상 감동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값비싼 구두는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지 못한다. 마치 나사못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망가지듯 사람들이 순결한 품성을 갖추지 못하면 그들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나사못은 반드시 망치질을 견뎌야 한다. 강한 망치질의 단련만이 나사못의 날카로움과 관통의 능력을 발하게 하며, 나사못으로 하여금 많은 재료들을 하나로 강력히 거머쥐게 하며, 그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게 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룰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아름다운 건물이란 모든 재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나사못을 향한 호된 망치질의 결과물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의 아름다운 삶은 고통과 인내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품성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기를 희망한다면 기꺼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품성을 지녀야 한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하형록 <16> “고통·인내로 연단한 좋은 품성이 삶을 지탱”
입력 2016-01-24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