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맛이 아닌 고통

입력 2016-01-22 17:53
매운 맛 고추. 위키피디아

추워야 제맛인 겨울이라지만 양질의 난방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도 꽤나 추운 요즘이다. ‘날씨가 맵다’는 표현은 추위를 매운맛에 비유하는 것이다. 매운맛은 일반적으로 뜨거움(hot)과 함께 오는데 차디찬 겨울 날씨를 맵다고 하는 것은 단지 반어적 표현일까.

인간이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은 5가지로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매운맛은 입안의 점막을 자극할 때 느껴지는 아픈 감각과 타는 듯한 온도감각이 복합된 피부감각의 일종이다. 즉, 매운맛은 미각세포에 의한 것이 아니고 통각 신경에 의해 감지되는 고통의 일종이다.

매운맛은 냄새 없이 자극하는 것(무취성: 고추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자극취성: 마늘류, 고추냉이류) 및 고유한 냄새를 지니는 것(방향성: 생강류) 등 3종류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무취성 화합물인 캡사이신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마늘 양파 파 등 백합과 식물의 황화아릴, 겨자나 고추냉이의 아릴겨자유 등 자극취성 화합물은 다소 생소한 것들이다.

매운맛을 낸다는 점은 동일하나 이 두 종류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지속성이다. 즉 이들은 오래가는 뜨거운 매운맛과 짧은 순간 강렬하게 다가오는 날카로운 매운맛으로 구분할 수 있다. 캡사이신은 열에 잘 분해되지 않아 뜨겁게 가열된 음식에도 여전히 강력한 고통을 유발하는 성질을 지닌다. 따라서 캡사이신의 뜨겁고 매운 고통은 그 지속성이 길다. 날카로운 매운맛은 자극취성 물질이 내는데, 이들은 열에 약해 가열되면 매운맛이 사라져 더운 음식에서 존재감을 상실한다. 그래서 고추냉이 겨자 마늘 등은 찬 음식을 맵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매운 시집살이, 매운 손맛, 그리고 겨울 날씨가 맵다는 것은 느껴지는 감각이나 상황이 고통스러움을 표현한 것이다. 맵다는 것이 맛이 아닌 고통임을 인지한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가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아마도 그들은 적당한 고통은 삶의 면역력을 강화시킨다는 점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적정함을 넘는 장기간 지속적인 고통은 삶을 퇴행시킨다. 매섭게 추운 날, 칼칼한 국물에 친구의 우정을 담아 자신의 고통을 적당함으로 녹여보면 좋겠다. 음식도 날씨도 사회도 적당히 매워야 할 일이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