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입소할 분을 소개합니다.” 담당자의 말에 30평쯤 되는 방에 누워 있던 외국인들이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하룻밤 신세질 기자입니다.” 인사를 건네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주민지원단체 지구촌사랑나눔이 서울 구로구에서 운영하는 이 ‘외국인 쉼터’에는 70여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주로 중국동포이고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출신도 있다. 숙박비는 무료다.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방장’ 황종우(79)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한 구석을 가리켰다.
겨울이 되면 쉼터는 북적인다. 날이 추워지면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일이 없어 숙소를 구할 돈도, 끼니를 때울 돈도 부족해지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많았다. 20일 오전 10시 입소해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지내며 이들의 ‘겨울 이야기’를 들었다.
“국물이랑 건더기 좀 많이 주세요”
오전 11시30분이 되자 사람들은 “밥시간”이라며 하나둘 일어났다. 이들을 따라 건물 4층의 쉼터에서 나와 1층 무료급식소로 향했다. 메뉴는 흰쌀밥에 아욱국 그리고 배추김치, 오이김치였다.
식사시간에는 배식 봉사자들과 급식소 이용자들의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앞선 사람이 국을 받을 차례에 “건더기 좀 많이 주세요” 하자 국을 뜨던 봉사자가 “뜨거워서 다 들고 가지도 못해요” 하며 맞섰다. 건더기는 늘었지만 국물 양은 그대로여서 영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이걸 본 다음 사람이 “국물이랑 건더기 좀 많이 주세요” 했다. 둘 다 많이 달라는 말에 봉사자가 헛웃음을 지으며 국그릇에 한가득 담았다.
하루 세끼를 제공하는데 한 끼에 150인분의 밥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120명쯤 먹으면 동이 난다. 이 급식 외에는 음식을 사먹기 어려운 형편이라 다들 많이 먹어서 그렇다. 지름이 20㎝쯤 되는 넓은 접시에 절반은 흰밥을 올리고 나머지는 김치를 담는다. 쉼터 생활자 70여명 외에 밥만 먹으러 온 사람도 60여명 있었다.
“여기가 없으면 어이(어디) 가겠어?”
이 쉼터에 좋아서 머무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방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다들 마음속에 사연 하나씩 품은 채였다.
안용태(65)씨는 1993년쯤 서울 김포공항역 지하철 공사를 하다 13m 높이에서 떨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쳤다. 당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보상금을 요구해 보려고 2014년 다시 한국에 왔는데, 공사업체가 이미 없어진 뒤였다. 서울에서 함께 지내던 누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명호(62)씨도 사고를 당했다. 2000년쯤 충남 당진 공사현장에서 작업 도중 허리에 쇠파이프가 떨어졌다고 했다. 병원에 다니느라 생활이 어려워져 2008년부터 2년간 이 쉼터에서 생활했다. 다시 일을 구해 지금은 자립에 성공했다. 그는 “날이 추워지니 여기서 지내던 때가 생각나 쉬는 날 종종 찾아온다”며 “이렇게 추울 때 여기가 없으면 어이 가겠어?”라고 되물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억양 때문인지 ‘어디’란 발음이 ‘어이’로 들렸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A씨(42)는 1999년 한국에 들어와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다. 고관절 수술이 필요한 그는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다. 당장은 손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일단 쉼터에서 겨울을 피하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봄을 기다리며
저녁식사를 마치고, 외출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쉼터로 돌아오자 수다가 시작됐다. 채청용(55)씨는 경기도 농장에서 일하다 지난달 일자리를 잃었다. 낮에 서울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직업소개소에 다녀온 터였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남동찬(43)씨는 9월 중국에 돌아갈 계획이다. 2013년 9월 한국에 온 그는 장애 때문에 일을 구하지 못했고 그해 겨울을 지하철역에서 보냈다. 말하는 게 무척 힘들어보였는데, 입을 겨우 벌려가며 2년 전 겨울을 설명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쉼터에서 지내며 운전면허를 땄다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커졌다.
한참을 떠들다 밤 10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옆자리에 누운 남씨는 “지금도 자기 전에 그 겨울을 생각하면 힘들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쉼터를 운영하는 김해성 목사는 “쉼터가 2000년 구로구로 이사한 뒤 범죄율이 줄어 고맙다며 경찰서장이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먹고 자는 기본권이 보장돼야 우리 사회가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오전 6시부터였다. 다시 국물과 건더기를 많이 달라는 말이 들렸다. 식사를 마치자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 쉼터를 나서기 시작했다.
글·사진=김판 기자 pan@kmib.co.kr
[서울 구로구 외국인 쉼터 24시] 일감도 갈곳도 없어… 이 혹한에 벌써 ‘봄꿈’
입력 2016-01-22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