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피부에 안 맞아서 바꿔 달라는데 왜 안 된다는 건데?”
서울 서대문구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모(24·여)씨는 지난달 18일 손님에게 한바탕 혼이 났다. 손님은 반도 넘게 쓴 핸드크림을 환불해 달라고 했다. ‘규정상 포장을 뜯은 제품은 환불할 수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점장을 찾으며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해댔지만 최씨는 그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비율 61.5%=화장품 시장은 빠른 속도로 크고 있다. 2011년 1조4232억원 규모에서 2014년 2조6432억원으로 3년 새 85.7%나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국의 화장품 유통매장은 1만261개에 이른다.
이런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는 최씨와 같은 판매직 노동자의 ‘눈물’이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서울지역 저임금 판매직 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화장품 매장의 판매직 종사자들은 저임금과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화장품 매장은 직영점보다는 가맹점이나 외주 형태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근로기준법이 부분 적용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취업규칙 의무적용 예외대상인 10인 미만 사업장이다. 이 때문에 판매직 근로자는 비정규직이 많고, 이직이 잦다. 2014년 10월 기준으로 90만7000명인 화장품 매장 판매직 가운데 비정규직은 55만7800명(61.5%)에 이른다. 근속기간은 2.7년에 불과하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5.6년)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하루 평균 50명, 주말에는 99.9명을 응대한다. 상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 테스트나 기타 상담 등 매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 많다.
◇주당 46.6시간 ‘고강도 노동’=근로시간은 길다. 주당 46.6시간을 일한다. 하루로 계산하면 8.5시간을 일하는데 쉬는 시간은 4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서서 보낸다. 최씨는 “제일 힘든 건 8시간 동안 서 있는 것”이라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서 있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명절연휴를 제외하고 거의 매일 가게 문을 열기 때문에 휴일근무는 일상이다. 김 연구위원이 화장품 매장 판매직 365명을 조사했더니 월평균 정기휴무는 3일에 그쳤다. 매월 주말에도 4.8일을 출근했다.
긴 근무시간은 이직으로 연결된다. 서울 강남의 한 뷰티&헬스 전문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6·여)씨는 “한창 놀고 싶은 나이인데 개인시간이 없다”며 “3교대를 주로 하는데 저녁근무를 하면 오후 10시나 11시, 어쩔 때는 자정이 넘어 퇴근하기도 한다. 그러고도 다음날 오전 8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이러다보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노동 강도는 세지만 임금은 ‘쥐꼬리’다. 평균 월급은 137만원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평균 222만원보다 85만원이나 적다. 초과근무 수당이나 주휴수당은 언감생심이다.
여기에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산재보험(44.4%) 고용보험(45.2%) 국민연금(44.7%) 건강보험(44.1%)의 가입률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화려한 화장품 매장 ‘미소 뒤의 눈물’
입력 2016-01-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