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게는 ‘세 개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다. 말씀을 연구하는 책방, 기도하는 골방, 성도들의 삶을 살피는 심방. 이 셋의 균형을 잘 갖추는 게 중요하다. 오늘날 여러 여건의 변화로 심방의 비중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심방은 여전히 중요한 사역임에 틀림없다.
성도들 대부분은 교회 가까운 곳에 살지만 일부는 교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 나의 경우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멀리서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을 심방한다. 팔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때로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분들이 매주 혹은 격주로 이 길을 온다고 생각하면 멀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분들은 왜 그토록 먼 길을 다니는가. 딱 한 가지 이유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오랫동안 교제한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최근 충북 괴산에 사는 집사님, 권사님 부부를 심방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분들은 10년 전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무 연고가 없는 괴산에 정착해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냇가에서 멀지 않은 집사님 댁에서 예배를 드린 뒤 함께 간 일행들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 서울로 올라가려 하는데 권사님이 꼭 만날 분들이 있다며 마을 경로당으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7∼8명의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집사님 부부는 농촌에 정착한 후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돕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병원 등에 가실 때 차로 동행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챙기는 일도 했다. 집사님 부부는 마치 어르신들의 자식처럼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신 것이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들이 내려온다고 해 어르신들이 모였다고 한다. 어색한 자리였지만 나는 어머니 같은 분들을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했다.
부엌에 들어가신 어르신들은 쑥스러워하며 우리 앞에 먹을 것을 내어 놓았다. 직접 찐 백설기였는데 뜨끈뜨끈했다.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불렀지만 백설기를 먹지 않고 나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며 먹었다. 한입 베어 먹으니 맛있었다.
한 할머니는 집사님 부부와 함께 개포동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린 덕분에 나를 기억한다고 하셨다. 그분은 목이 메일까 염려하셨는지 믹스 커피까지 타주셨다. 평소 믹스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맛있게 마셨다. 백설기에 담긴 정(情)을 함께 먹어서 그런가 보다.
요즘도 백설기를 보면 그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다음에 내려가면 또 뵙고 싶다. 그분들의 따뜻한 정성이 담긴 떡 한 덩이가 남긴 여운은 컸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만남에서도 온정을 느끼고 나눌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매년 한두 차례 교회 인근에 사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한다. 잔치에 오신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괴산 경로당에서 만났던 분들이 떠오른다.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 그분들의 사랑을 다른 어르신들에게 흘려보내고 싶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대접받은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어르신들의 팍팍한 삶에 힘찬 응원가로 들려지면 좋겠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어르신들의 삶이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이풍인 목사(서울 개포동교회)
◇약력=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교수, 하버드대 신학석사, 옥스퍼드대 신학박사. 2008년 개포동교회 부임.
[따뜻한 밥 한 끼-이풍인] 시골 경로당서 떡을 대접 받다
입력 2016-01-21 18:47 수정 2016-01-21 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