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명정치의 끝은 어딘가, 동원·독려 등이 횡행하니

입력 2016-01-21 17:35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가 주도하는 경제활성화 관련 입법 촉구 서명운동이 ‘관제’ 논란을 낳고 있다. 여러 정황이 이를 말해준다.

서명 움직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이 나서 달라”고 호소한 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18일 대통령이 ‘길거리 서명’을 한데 이어 국무총리가 서명 인증샷을 올렸고 장차관 등 정부가 동참했다. 특히 대한상의는 매일 서명 인원을 취합해 보고할 것을 서명참여 단체장에게 요청했고, 손해보험협회는 회원기업들에 보낸 공문에 서명 취지가 ‘대통령 대국민 담화 호응’이라는 문구를 삽입해 관제 시비를 증폭시켰다.

이후 삼성 계열사 사장들이 서명을 했고 다른 대기업들도 호응했다. 한마디로 ‘대통령 담화→경제단체 서명시작→대통령 서명→장차관 동참→서명 재계 확산’의 수순을 밟은 데다 그 과정에서 ‘동원·독려·보고’라는 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순수한 자발적 캠페인이라 하기 어렵다.

당초 대통령의 서명 참여에 대해서도 법리적 지적이 있었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는 국민청원권의 일종인 서명운동에 최종적 피청원권자인 대통령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통령은 청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청원에 대답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서명의 본질은 약자가 여론을 등에 업고 강자에 대응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돼 정부와 경제단체, 재벌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형태의 서명은 진정한 민의를 반영할 수 없다.

이런 여론 수렴 과정은 정당하지 않을 뿐더러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가 관련 법안들을 놓고 서로 양보하며 조율하는 중이다. 관제 서명 압박은 이 같은 절충 움직임을 더 꼬이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을 갈라놓는 부작용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