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든다.” 얼마 전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에 등장한 대사이다. 지난 3개월간 우리 국민들은 이 드라마가 그려낸 쌍팔년도 추억에 빠져들어 울고 웃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큰 인기를 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드라마에서 다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적 요소들이 없지 않지만, ‘응팔’ 안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가득하다. 달달한 러브 라인 말고도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무뚝뚝하지만 끈끈한 부부 간의 사랑(의리), 툭탁거려도 든든한 형제간 우애,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웃의 정, 그리고 무엇보다 ‘골목’을 무대로 함께 커가는 친구들의 우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달구어 주었다.
이 드라마 속에 내가 발견한 것은 고향으로서의 서울이다. 고향의 이미지는 자연 속 시골 풍경이다. 첨단 문화 속의 현대에서 이 풍경은 사라져버렸다. 산업화 이후 세대에게 서울은 고향이 되었다. 개발 전의 서울이 많은 이들에게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다닥다닥 모여 살던 동네 골목은 쌍팔년도 세대들에게 아파트 단지에서 찾기 힘든 기억 속의 옛 고향이다.
이 드라마에서 깨어나 우리 주위를 보자. 많은 아이들에게는 이젠 밥을 해 놓고 이름을 부르는 엄마도 없고, 서로 기댈 형제도 없다. 혼자 큰다. 프라이버시라는 명분 속에 이웃은 그저 익명의 근거리 거주자일 뿐이고,(가끔 택배만 서로 받아준다) 청소년기부터 서열화된 입시와 취업의 정글 속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잠재적 경쟁자이다.
어느새 우리는 ‘골목’으로 대변되는 고향을 잃어버렸다. 극 중 똑똑하고 까칠한 성보라와 동갑인 본인이 호출한 1988년은 기독교 청년문화가 꽃 피우기 시작한 황금기였다. 교단이나 교회연합기관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교회의 당회 차원의 목회 전략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1980년대 기독청년들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그들만의 자생적 하위문화를 만들어냈다.
드라마에서 들려오는 그 때 노래들에서 40대 시청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지난날의 나를 만났던 것처럼, 1988년 기독교 청년운동은 현대기독교음악(CCM)이라 이름 붙였던 새 노래들이 우리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5년 발매된 주찬양 1집을 필두로, 1988년 무렵에는 박종호, 최인혁, 손영지, 찬양하는 사람들, 옹기장이, 그리고 두란노 경배와 찬양의 데뷔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노래는 각 교회 청소년과 청년 모임에 소리 없이 퍼져갔고, 때론 어른들과 세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며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어릴 적 예배당은 나에겐 ‘쌍문동 골목’ 같은 놀이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당에 가면 함께 놀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끼리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걸고 키득거리며 놀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내 맘을 설레게 한 ‘덕선이’(혜리)도 있었고 말이다(부끄럽지만 나는 지금 그 ‘덕선이’와 같이 사는 행운의 ‘최택’이다.).
각 지역의 교회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골목’이 되어주면 좋겠다. 화려한 건물과 세련된 프로그램이 전부는 아니다. 굳게 닫힌 교회 문을 열고 아이들과 이웃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작은 교회들이 이 부분에서 훨씬 유리하다.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기도할 때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혁명이 시작될 수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또래 간의 연대와 공동체성의 회복만이 치열한 생존 게임의 룰을 바꾸는 방법일 테니까.
지금 나는 어릴 적 서울 봉천동 허름한 교회당 건물에서 뛰놀던 옛 친구들을 호출한다. 들리는가? 들리면 응답하라. 그 때 그 교회.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
◇약력 △미국 드루대 철학박사(Ph.D, 기독교문화 전공) △한국컨티넨탈싱어즈 지도목사 △전 명지대 교목 △한국문화신학회 대중문화분과 이사.
[윤영훈의 컬처 토크] 지금 우리에겐 그 때 그 골목이 없다
입력 2016-01-22 18:16 수정 2016-01-22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