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양벌규정에 감춰진 십자가

입력 2016-01-22 18:13

최근 모 폰트 업체가 전국 초중고교 및 대학교를 상대로 내용증명우편을 뿌렸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다.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 개발업자들은 저작권법에 장치된 양벌규정을 활용하여 침해자들에게 피해액을 받아낸다. 양벌규정은 법인의 업무 담당자인 침해자뿐만 아니라 그가 소속된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이다.

권리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저작물이 무단으로 도용된 데 따른 불이익이 큰 점을 호소한다. 반면 침해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다운로드 한 것이 불법인지 몰랐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재의 저작권법은 ‘법률의 무지’를 용서하지 않아 한 순간의 실수도 고의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실무상 개발자들이 법무법인과 손잡고 양벌규정을 언급하면서 침해자에게 가해질 징계의 약점을 파고들어 해당 프로그램을 과도한 금액으로 강매하는 관행이 반복된다.

법령 정비를 통해 상업적 이용이 없는 침해에 대한 처벌은 제한시키고 고의 성립 여부를 세분화해 법무법인을 통한 고소 남발을 축소시키는 것이 좋다. 또 권리자의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해 줄 수 있는 민사적 해결 방안을 활성화시켜 균형 잡힌 저작권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만약 우리 앞에 법무법인의 내용증명이 당도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엔 무대응과 합의,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침묵할 경우 법무법인이 추가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혹시 다시 연락하면 침해증거자료를 요청하라. 직접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판매대금을 확인한 후 협상에 돌입하거나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개발자들이 구매 범위를 벗어난 프로그램의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는 판매자의 약관 설명 의무 위반을 들어 항변하자.

개인적으로 저작권 침해에 대응할 때마다 양벌규정은 주님의 십자가를 떠오르게 한다. 침해자인 개인 때문에 비침해자인 법인이 처벌받게 되는 양벌규정과 죄 있는 인간을 대신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처벌받는 대속의 은혜는 대응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보자. 뱀에게 주어진 형벌은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창 3:14)”이다. 이 형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1:17)”는 말씀과 대비된다.

아담은 금단의 열매를 먹어 죽게 되었고 뱀은 흙을 먹게 되었다. 결국 사람을 돕기 위해 지음 받은 뱀은 아담의 후예를 죽이는 일을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구원을 길을 알려주셨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아담이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데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도 상하게 된 사실은 주님이 죄의 대속물이 되심을 알려준다(시 41:9, 요 13:18). 이는 십자가 속에 숨겨진 양벌규정이다. 우리 죄를 씻기 위해 걸어가신 예수님의 십자가(막 9:31)를 바라볼 때 아담 속에서 선악과를 먹었던 우리는 이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막 14:22∼23, 요 6:53∼58).

십자가 양벌규정의 최고조에 도달한 사도바울은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바울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경험했다. 양벌규정은 나를 공격하지만 십자가의 양벌규정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는 점을 깨달을 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박상흠 변호사 (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