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은 右往左往
발등의 불 ‘보육대란’이 떨어진 유치원의 상황은 어떨까. 21일 오전에 둘러본 집 근처 T유치원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원장은 걸려오는 문의전화에, 교사들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에 안절부절못했다. 등원하는 아이들을 포옹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다. 보육대란의 폭탄이 터진 현장은 우왕좌왕(右往左往)이다.
“학부모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데 교육 당국의 지침은 아무것도 내려온 것이 없어요.” 원장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있었다. 하소연은 계속됐다. “누리과정 지원금 중단에 따른 운영비 부족분을 당장 학부모에게 청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25일에는 교사 월급도 줘야 되는데 걱정이 태산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에 “사비를 털어 이달은 어떻게든 버티지만 지원금이 계속 중단되면 어찌해야 할지 막막해요. 이대로 가면 결국 학부모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교사들도 “설마설마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장과 교사의 한탄을 위정자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
#학부모는 雪上加霜
지난달만 해도 이웃집 부부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딸아이가 ‘유치원 갈아타기’에 가까스로 성공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것도 3수(修) 끝에 ‘로또’라는 유치원 추첨에 당첨돼 그 기쁨이 어떠한지 짐작이 갔다. 이 부부는 2년 동안 유치원 문을 줄기차게 두드렸다. 오직 하나, 보육대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리과정 예산 파동은 어린이집에 국한됐다. 그런데 불과 1개월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불똥이 유치원으로 튄 것이다. 정부와 시·도교육청, 시·도의회 간의 ‘치킨게임’에 유치원 아동까지 볼모로 잡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집은 현재 한 달 이상 여유가 있다. 이웃 부부의 ‘환호’가 지금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분노로 바뀐 이유다. 최근 만난 이 부부는 치가 떨린다고까지 했다. “보육비 지원이 확실한 유치원에 붙었다고 좋아했는데 다시 유치원 보육비 문제로 싸우다니 정말로 어이없다.” “큰 불을 피했다고 안도했는데 더 큰 불에 뛰어든 꼴이다.” “위정자들이 내 자식을 인질로 잡아놓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설상가상(雪上加霜)에 울분을 토하고 있는 학부모가 이 부부뿐이겠는가.
#결국에는 各自圖生
유치원비 인상을 예고하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기 시작한 유치원, 임금체불 예고장을 받아든 교사, 보육비를 추가로 낼 처지에 놓인 학부모. 서울, 경기, 전남, 광주 지역 유치원에서 시작된 보육대란은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 전국으로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을 보듬어야 할 정부와 정치권, 시·도교육청, 시·도의회는 여전히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현안에 대해 직설적인 화법도 서슴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도 20일 교육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최대 이슈인 보육대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 학부모, 교사 등의 불편과 고통은 커져가고 있다.
어디 누리과정뿐이랴. 크고 작은 난제가 수두룩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는 위정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는 식이다. ‘제각기 살아날 방법을 꾀한다’는 이 말이 요즘 화두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을 거치면서 우리는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말 보호받고 있는가’라는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보호받지 못한 개인들이 각자 자신을 책임지는 각자도생, 그런 나라에 희망은 없다. 국민들의 아우성과 비명을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여의춘추-김준동] 보육대란도 각자도생하라고?
입력 2016-01-21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