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신창호] 어설픈 한류의 정치학

입력 2016-01-21 17:41

열여섯의 어린 소녀가 자기 나라 국기를 흔드는 장면 하나를 놓고 온 나라가 흔들거렸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 얘기다.

이 요정들의 타깃 시장을 한·중·일로 맞춰 놓은 매니지먼트사 JYP는 ‘양안(兩岸) 관계’의 질곡 속에서 대만기가 문제 될 것 같으니, 쯔위에게 “행동을 사과한다”고 발표하게 만들었다. 행여나 중국시장에서 외면당할까 봐 조바심을 낸 셈이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격노한 대만인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에게, 중국인들은 대만인과 한국인에게 손가락질했다. 10대 소녀의 인권 침해에서부터 중국과 대만의 복잡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와 논란거리가 됐다.

트와이스는 모두 또래인 10대로 한국인 5명, 일본인 3명, 대만인 1명으로 구성돼 있다. JYP가 해외시장을 겨냥해 뽑은 뒤 춤과 노래를 연습시켜 선보인 걸그룹이다. 매니지먼트사가 노래를 만들고, 안무도 만들고, 앨범도 만들고, 매스컴 노출도 기획하고, 여기저기 쇼에도 출연시켰다. 노래는 한결같이 밝고 발랄했다. 과다한 노출에 짙은 화장을 한 10대 소녀들이 또렷한 한국말이라 하기 ‘좀 그런’ 언어로 노래를 했다. 잘해야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멤버들은 모르모트처럼 길들여졌다. 당연히 목적은 오로지 돈벌이였다.

트와이스 같은 걸그룹은 하나둘이 아니다. ‘원조’인 소녀시대부터 요즘 나오는 아이돌이 다 이렇다. 문화산업이란 멋진 개념으로 포장한 채 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비된다. 한국이 좁으니 중국으로, 일본으로, 동남아로 소비시장을 확대한다. 한번 듣고 말면 되는 노래들, 한번 보고 말면 되는 춤들, 인스턴트식품 같은 음악이 흘러넘친다. 그러다가 쯔위 사태가 터졌다.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라 남에 의해 ‘길들여진’ 쯔위는 시키는 대로 사과했다. JYP가 사과를 ‘시킨’ 이유도 돈이었다. 이게 한류(韓流)의 현실이다. 대통령까지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한류의 단면이다.

2001년 펑크밴드 노브레인은 일본의 록 페스티벌에 초청돼 공연하다 욱일승천기를 찢어버렸다. 일본 정권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항의였다. 이 밴드는 다시는 일본에서 공연할 수 없게 됐다. 이상한 일은 이 사건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잊혀졌다는 것이다. 노브레인은 대단한 매니지먼트사도 없었고, 돈벌이가 목적이지도 않았다.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아직도 “전혀 잘못한 일인 것 같지 않다”고 한다.

1984년 미국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성조기를 향해 소변을 보는 사진을 실은 ‘본 인 더 유에스에이(Born In The USA)’란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은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됐고, 몇몇 곡은 그의 손자뻘인 20대 로커들에 의해 아직 불린다.

가끔씩 문화는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적이지 않게 정치적이 된다. 문화 자체가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반성이자 비판이며,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 좋은 그림, 좋은 클래식 음악은 이런 터전에서 평가받고 또 살아남는다.

대중음악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 없다. 만날 귀엽고 즐겁고 신나기만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루이 암스트롱과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가 살아남아 인종차별 극복의 역사를 말해주고, 존 바에즈가 부른 ‘위 셸 오버컴(We Shall Overcome)’이 여전히 60년대 민권운동의 전통을 미국 민주주의의 정체성으로 지칭해주는 시대다. 우리 평범한 한국인의 가슴에 그런 노래가 하나쯤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