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최범선] 한파주의보

입력 2016-01-21 18:39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추위 없는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더니 역시 겨울이다 싶은 혹독한 한파가 찾아왔다. 한강도 일부 결빙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매서운 추위다.

한파로 인한 피해 소식도 들려온다.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고, 산행을 떠난 이들에게 닥친 불행한 소식도 들린다. 예년에 비해 그리 추운 것도, 이기지 못할 추위도 아니건만 모두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한파’도 우리 마음을 깊은 곳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양심도, 사랑도 모두 꽁꽁 얼어붙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사회적 한파를 경고하는 사람들, 이 한파를 극복하고자 정보를 나누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하고 훼손된 시신을 냉장고에 3년 넘게 보관하고 이사 하면서도 그대로 옮겼다는 소식은 우리의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뉴스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 조사가 이뤄져 정확한 사실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희생을 당한 어린이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가 있던 해 4월 말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는 학교대로, 주민센터는 주민센터대로 변명의 근거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안쓰러울 뿐이다.

사실 인천에서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학대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장기결석 학생에 대한 전수 조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전수조사가 없었다면 이 끔찍한 사건은 밝혀지지도 않았을 거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하는 어린이가 있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이웃에게 무관심했다. 이런 사회의 무관심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이유다.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아이는 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아이의 시체는 훼손당했다. 사태의 책임은 그 어린이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며 호흡한 나에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한 이 사회적 한파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일기예보를 접한다. 한파주의보가 발령되면 곧바로 그 소식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한파’와 관련된 주의보는 누가 내릴 수 있을까.

누가복음 10장 25∼28절의 말씀에서 어떤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느냐 반문하신다. 이 반문에 율법학자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의 중요성을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결단이 중요하다. 이러한 결단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실천이 없는 우리의 모습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 한파를 막으려면 서로에 대한 더 따뜻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최범선 목사 (용두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