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부모보다 부부

입력 2016-01-22 18:26

수년 전 한 여고생이 우울과 신체증상을 호소하며 상담실에 찾아왔다. 엄마 손에 끌려오듯 상담실에 온 아이는 한눈에 봐도 핏기 없는 얼굴에 청소년다운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위장장애, 두통 등 다양한 증상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는 달라졌다. 처음 봤던 그 아이가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뀌었다. 단둘이 만나는 몇 번의 회의와 상담 이후에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조리 있고 생생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엄마 역시 상담실을 나가면서부터 조금씩 표정이 달라졌다. 엄마의 표현으로는 ‘너무 유약하고 예민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였지만 실제 모습은 달랐다. 생각이 깊고 자기표현과 주관 역시 뚜렷한 아이었다.

“내가 아파야 집안이 편해요.”

자신을 괴롭히는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이혼을 고려할 만큼 부부관계가 어려웠을 때 아이의 증상이 처음 나타났는데, 이를 해결하느라 부부 갈등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결국 ‘둘이서 절대 못 살 것 같은 부모’는 자신의 문제 때문에 하나가 되었고, 집안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는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질병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대가는 아이의 인생이었다.

이런 사례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아이의 다양한 문제들이 실제로는 부모의 갈등에 대한 무의식적 대처인 경우 말이다. 때로는 비행이나 폭력과 같은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거나 우울, 불안 등 내면적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로서는 부모를 돕고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시도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식적이라는 점에서 증상을 통제할 수 없고, 오래 반복할수록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정의 시작은 ‘부모를 떠나 한몸이 되는 부부’(창 2:24)다. 부부관계만으로도 가정의 충분조건이 성립된다. 자녀는 선물(시 127:3)일 뿐 부부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적인 가정은 부모와 자녀관계보다 부부관계가 우선이다.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녀라는 끈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아이의 인생마저 왜곡시킨다.

사춘기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장 좋은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면 자녀에게 쏟는 에너지와 시간 일부를 배우자와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안정된 가정’과 ‘행복한 부모’의 모습이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