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다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입력 2016-01-21 17:40

이스라엘의 벧엘(Bethel)과 아이(Ai) 사이에 있는 땅에서는 다툼의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땅은 좁은데 아브람과 롯이 각각 소유한 게 많아서 함께 지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각각의 목자들은 자신의 양들에게 더 좋은 목초지와 안식처를 제공하려 애썼습니다. 주인인 아브람과 롯이 친족임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은 서로가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의 말다툼은 몸싸움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서로가 이성을 잃고 극한 감정만 남아 다툼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던 것이죠. 심지어 그곳에는 이방 민족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툼이 있기 전 그들 눈에 아브람과 롯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을 든든하게 후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거죠.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서로의 이익만 챙기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며 예의도 없이 다투기만 하는 목자들을 보면서 이방인들 입가에서는 비소(誹笑)가 흘러나왔습니다. ‘복을 받으면 뭐해. 친족끼리 서로 싸움질만 하는데.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보다 못한 아브람이 결국 나섰습니다. 아브람은 먼저 롯을 찾아갔습니다. 아브람이 훨씬 연장자이지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것입니다. 추락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체면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겸허함과 공명을 위해 헌신하는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세우십니다. 그는 공동체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은 인물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고 말했습니다. 친족, 즉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친족은 설령 다툼의 요인이 있어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와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함께 사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행 2:44∼45). 아브람은 이것이 회복돼야만 다툼이 그친다고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다른 이들과 달리 가치 있는 일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그의 삶에 올무가 될지라도 옳은 가치를 먼저 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우리 삶의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와 교회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목소리만 커져서 각종 ‘관계’가 깨지는 일이 빈번합니다. 젊은이든 어른이든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구하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에게 아브람의 삶을 들여다 볼 여유와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화해와 양보와 희생과 권리포기, 그리고 사랑의 가치들이 다시금 우리 가운데서 싹이 나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가치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귀중한 가치라고 믿습니다. 그것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공의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간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이런 가치가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송근종 목사(관악중앙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