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화재경보기가 울린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복도에 늘어서 있는 문들이 하나둘 열린다. 사람들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연기나 불꽃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온다. 다시 경보음이 울린다. 오전 내내 벌써 세 번째다. 하필이면 이런 날,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는 날, 화재경보기는 왜 자꾸 저 혼자 울리는가.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떠오른다. 처음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는 좀 슬펐다. 아무리 여러 번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홀로 있는 소년 앞에 늑대가 나타났다는데,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끝내 달려와야 할 것 같았다. 외로워서 거짓말을 했는데,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치명적 외로움에 이르게 되다니. 교훈이란 차갑고 단단하다. 변주도 반전도 예외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투적 상황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은 사라진다. 마음을 사로잡는 위험의 매혹도 사라진다.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은 모두 새롭고 낯선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위험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반복되어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자극은 종종 무시된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어떤 상황이나 말들은 그저 화석으로 굳어진 거짓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유효한 정보도,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진실도 사라진.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심장도 얼어붙게 만들 추위가 발목을 잡는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화재경보기를 자꾸 건드리고 있다는 거짓말이 떠오른다. 안전한 일상 한 구석에 늑대 한 마리가 털을 부풀리며 숨어 있다는 또 다른 거짓말도. 어떻게 할 것인가. 피 흘리지 않는 따뜻한 일상에 응답할 것인가. 순한 양떼를 흩뜨리며 나타날 늑대에게 응답할 것인가.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응답하라
입력 2016-01-21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