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에 정말 치가 떨리네요.” 경기도 광명시의 한 유치원 앞에서 만난 ‘직장맘’ 한모(34)씨는 현실화된 ‘보육대란’에 이렇게 말했다. 한씨는 여섯 살 큰아이에 이어 올해 다섯 살이 된 둘째도 유치원에 보낼 계획이다. 첫아이만 유치원에 보낼 때는 매달 20만∼30만원을 부담했다. 하지만 누리과정 지원금 29만원이 끊긴다면 당장 두 배를 내야 할 처지다. 작은아이까지 다니면 무려 4배로 뛴다. 한씨는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맞벌이라 둘 다 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약속해 놓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부모, 교사들 ‘분통’=20일 서울과 경기지역의 유치원 학부모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유치원비 인상을 예고하는 가정통신문이 발송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짜증난다”는 반응을 넘어 분노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에서 만난 김모(32·여)씨는 “학부모와 아이들을 위한다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논쟁은 그 다음으로 미뤘어야 했다”며 “우선순위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러는 건 정치적 이익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임금체불 예고장을 받아든 교사들도 불만이 치솟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는 이날 누리과정 지원금이 끊길 것에 대비해 교사들에게 이달 말까지 임금 체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고지했다. 연합회는 “이달 말까지 월급을 기다려 달라고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한 유치원 교사는 “설마 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당장 카드값도 내야 하고 적금도 넣어야 하는데 답이 없다. 이번 달은 어떻게든 여기저기서 메워보고 이후에는 대출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송기문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경기지회장은 “지금 상태로 가면 학부모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더구나 조금 있으면 설이다. 더 주지 못할망정 월급조차 거를 수는 없는 일이다. 임금체불로 원장들이 교사들에게 고발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난장판’ 교육·보육 현장=보육대란의 직격탄을 맞은 경기지역 유치원에선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결국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했다. 80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는 광명시 A유치원 장모(55·여) 원장은 “지금 모든 유치원에 난리가 났다. 오늘도 원장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가졌다”며 “당장 오는 25∼30일 교사들 월급을 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 돈을 끌어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전화도 빗발친다고 했다. 장 원장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누리과정 지원이 없으면 결국 유치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걸려오면 ‘올해에는 지원이 되겠죠’ ‘약속한 건데 지키겠죠’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1월은 평소 같으면 아이들을 돌보면서 올해 계획을 세우고 교수법과 교재 등을 다듬어야 할 분주한 시기다. 특히 아동학대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예방책을 찾기 위해 원장과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그런데도 서울지역 유치원의 원장과 교사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이날 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원장과 교사, 학부모 200여명은 호소문에서 “당장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면 유치원들은 교사 급여와 차량 운행비, 난방비 등을 지불하지 못해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학부모들에게 교육비 전액을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지역의 유치원 원장과 학부모들도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21일 700∼800명이 경기도청 정문 앞으로 모일 예정이다.
이도경 심희정 기자, 광명=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분노의 현장 르포] “어떻게 할지 막막… 배신감에 치 떨린다”
입력 2016-01-20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