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忍-忍-忍 국산 新무기 제조 키워드… 연구에서 완성까지 지난했던 개발史

입력 2016-01-22 04:00

"하나의 무기가 나오기까지 숱한 어려움과 환희가 교차합니다. 원하는 수준의 무기가 나올 때까지 무한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마음은 급하지만 무기들은 매우 천천히, 지극히 천천히 개발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제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국산 무기의 산실'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27년째 근무 중인 이정석(52) 박사는 무기개발 작업을 '출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난산(難産)'입니다. 어렵게 낳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부모 마음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립니다. 무기 개발자들도 똑같습니다. 자신이 참여해 개발한 무기들이 잘못 작동되거나 고장이 나면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큰 죄를 지은 듯 얼굴을 못 들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믿듯 자신이 개발한 무기가 최고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무기 개발=무기를 개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18일 충북 충주 남한강에서 실시된 제20기계화보병사단의 혹한기 도하훈련에서 위용을 뽐냈던 육군 최신예 전차 K-2는 1995년 개념연구가 시작된 지 9년여가 지난 2014년 7월 군에 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육군 주력 보병전투장갑차 K-21은 1991년에 필요성이 제기돼 연구에 들어간 지 18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이 전방에 배치해 놓은 방사포에 대응하는 K-9 자주포는 개발하자는 의견이 제기된 뒤 9년 만인 1999년에 완성됐습니다. 사거리 40㎞ 이상인 52구경 자주포가 개발돼 배치된 것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독일 자주포 PzH2000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합니다. K-9은 터키에도 기술수출이 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잠수함에 실려 적의 잠수함이나 수상함을 공격하는 국산 어뢰를 개발하는 데는 25년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MK-44 어뢰를 모방해 처음 개발한 것이 KT-75입니다. 1975년에 개발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어뢰가 진화된 국산 어뢰가 백상어로 2000년 국산 잠수함에 장착됐습니다. 어뢰개발 사업은 ‘상어사업’로 불려서 이후 ‘백상어’, ‘청상어’, ‘홍상어’가 개발됐습니다. 백상어는 중어뢰, 청상어는 경어뢰를 지칭합니다. 홍상어는 청상어를 활용한 장거리 어뢰입니다.

북한에 비해 우리 군이 아주 뒤떨어져 있는 무기가 미사일입니다. 북한은 한국을 위협하는 300∼600㎞ 스커드,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되는 전력이 있는 주일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사거리 1000㎞ 이상의 노동미사일에다 태평양 괌 미군기지까지 타격이 가능한 사거리 3500㎞의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를 갖고 있는 데다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반면 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사일은 ‘현무’입니다. 현무II는 사거리가 180㎞에서 500㎞, 800㎞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만 북한에 비하면 많이 모자랍니다. 현무가 개발되는 데는 7년이 걸렸습니다. 지대공 미사일 ‘천궁’은 14년 걸려 완성됐습니다.

실패와 좌절의 연속=시간만 오래 걸리는 게 아닙니다. 과정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기 개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도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함대함 유도탄 ‘해성’은 멀리서 적 수상함을 공격할 수 있는 최첨단 순항미사일입니다. 잠수함에서 발사가 가능한 잠대지 유도탄으로도 개발된 해성은 아주 똑똑한 미사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ADD의 설명에 따르면 해성은 소형 유도탄정에서부터 대형 항공모함까지 공격할 수 있고, 소형 고속정에서부터 구축함까지 어느 곳에든 탑재가 가능합니다. 해면에 밀착해서 움직이거나 갑자기 튀어올라 공격할 수 있고 한 번 실패한 뒤에는 또 다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 현대전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96년 개발에 착수해 2003년 실전 배치된 해성은 개발자들의 속을 어지간히 썩였습니다. 2001년 6월 첫 번째 발사시험은 훌륭했습니다. 시간을 잘못 맞춰 2초 정도 일찍 발사됐지만 정상적으로 비행해 안정적으로 목표물을 맞혔습니다. 발사책임 통제원이었던 K실장은 너무나 감격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세 번째 비행시험에는 발사 후 60초 만에 추락하고 유도과정 시험에서도 연속 실패했습니다. 수석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윤현로 박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몇 달간 여러 연구원들이 개미떼처럼 붙어서 밤낮없이 준비해 왔는데 너무나 허탈해 한 달간 밥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며 당시의 좌절감을 전했습니다.

천궁은 1, 2차 발사시험이 모두 실패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차 시험을 앞두고 연구원 모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력의 한계에 연구원들은 가슴을 쳤고 설계부터 다시 검토해야 했습니다. 한 어부가 우연히 1차 실험 시 추락한 잔해물을 건져내 준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실패한 잔해물에 답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K-9 자주포를 개발할 때였습니다. 연구실에서는 문제가 없던 K-9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요인들을 모셔놓고 시험발사를 할 때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997년 12월 K-9의 최대 발사속도를 시험하는 중 개발 작업에 참여했던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정동수 대리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장비 점검을 위해 대기 중 발생한 화재로 여러 명이 화상을 입었는데 정 대리는 끝내 소생하지 못했습니다.

진화하는 무기 개발=오랜 기간을 거쳐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개발된 무기들도 막상 현장에 배치되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문제없이 작동되도록 개발하지만 실제 사용할 때는 예상치 못한 사안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생산되는 새로운 무기들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K-11 복합소총처럼 지속적으로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용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무기를 개발할 때 한꺼번에 모든 기능을 다 충족할 정도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1단계 개발을 한 뒤 이를 기초로 한 단계씩 더 발전되는 형태로 만들어냅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