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이라는 경제학 분야가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들의 비합리적 선택을 연구한다. 이 분야가 최근 ‘경제학의 혁명’이라는 평가와 함께 경제학계의 주류에 진입하는 중이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리처드 탈러 교수(시카고대 경영대학원·사진)가 지난해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고, 동료 행동경제학자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교수(예일대)가 올해 그의 뒤를 이어받았다는 게 단적인 증거가 될 수 있겠다. 리처드 탈러는 경제학계의 이단아들이 연이어 경제학회 수장을 맡게 된 것을 두고 “정신병자들이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행동경제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책으로는 ‘넛지(nudge)’가 유명하다. 2008년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2009년 국내에서도 번역돼 40만부 이상이 팔렸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란 뜻이다. 책에서는 ‘금지’나 ‘인센티브’처럼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미리 알려주거나 암시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기, 또는 선택권을 열어놓으면서도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넛지’라는 개념은 특히 공공정책 분야에 영감을 제공했는데, 영국과 미국에서는 정부 산하에 ‘행동연구팀’을 설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시 여름휴가에서 ‘넛지’를 읽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은 ‘넛지’를 쓴 리처드 탈러 교수가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행동경제학의 형성과 전개, 핵심 개념, 발전 방향 등을 자신의 학문적 회고록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의 학문적 이력이 행동경제학의 역사를 이뤄왔다는 점에서 이런 구성은 타당할 뿐만 아니라 경제학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전개하는 적절한 방식이 된다.
얘기는 행동경제학이 태동하는 1970년에서 시작된다. 행동경제학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주목하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보다 사실적인 답변을 찾기 위해 탐구해온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분야다. 이들은 “사람들은 최적화 작업을 거쳐 선택을 한다”는 경제학의 핵심 가정에 의문을 품었고, “똑똑한 사람들조차 흔히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고 보았다.
이들의 생각은 “우리는 이콘(경제적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재와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제학적 연구에 대한 활발한 접근이다”라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전통 경제학의 합리적 모형이 별로 중요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변수들, 즉 인간의 심리나 욕망, 충동, 착각, 정보의 편향, 시간적 한계 등을 중심으로 일상과 비즈니스, 공공정책의 문제들을 풀어보려는 시도를 전개해 왔다.
이 책은 경제학 혁명에 대한 보고서이자 첨단 지식 분야에 대한 해설서이면서 한 석학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또 개인과 기업, 공공기관에서 참조할만한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복잡하고 딱딱한 주제를 풍부한 일화와 유머러스한 필체로 다뤄낸 솜씨가 놀랍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인간이 계산기 두드리며 똑똑한 선택을 한다고?
입력 2016-01-2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