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청천백일기의 슬픈 운명

입력 2016-01-20 17:39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위는 애매모호하다. 나라인 듯 나라 같지 않은 나라다. 고산 윤선도가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한 대나무 같은 존재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 모두 갖췄지만 유엔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20여 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태평양과 중남미의 작은 나라들이고, 눈물겨운 대만의 달러외교 덕분에 겨우 가능한 일이다.

대만은 국제행사나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국호(중화민국), 국기(청천백일기), 국가(삼민주의가)를 사용하지 못 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 정부는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92 공식(共識)’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만은 참석기회조차 별로 주어지지 않는 국제무대에서 중화타이베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깃발도 국화인 매화 바탕에 국가 문장을 넣은 중화타이베이기를 사용한다.

다국적 9인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17)가 국내 방송프로그램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든 것을 두고 한국과 중국, 대만에서 논란이 뜨겁다. 중국 진출 등을 겨냥해 만든 걸그룹이 중국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으니 난리가 났다. 쯔위를 모델로 한 중국 상품 광고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대만인이 대만 국기를 흔든 게 무슨 잘못이라고 당사자인 쯔위는 물론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도 머리를 조아렸다.

쯔위는 IS에 잡힌 인질마냥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는 중국은 하나밖에 없고, 자신을 대만인이 아닌 중국인이라고 했다. 거대시장 중국의 힘이고, 중국을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야반도주식 국교단절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앙금이 깊은 대만인들 사이에 이번 일로 또다시 반한감정이 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대만도 주요한 한류시장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