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이우환 ‘위작’ 해법은

입력 2016-01-20 17:37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당사자가 모든 사실을 밝히는 게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다가는 자칫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면 당사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해 초부터 미술계에 이우환 화백의 위작 논란이 핫이슈다. 이 화백의 작품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화백의 작품 가운데 가짜가 많다는 의혹은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위작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얘기다. 돈이 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가짜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 화백의 경우 국내외 경매를 통해 작품 한 점이 수십억원에 판매되고 세계 유수의 뮤지엄 초대전이 잇따라 ‘블루칩 작가’로 떴다. 베끼기가 비교적 쉬워 실력 좋은 위조범이 노릴 만하다고 한다.

최근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는 지난달 15일 K옥션 경매에 출품된 이 화백의 1978년 작품 ‘점으로부터 No. 780217’(수수료 포함 5억7085만원 낙찰)에 첨부된 한국화랑협회 감정서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화랑협회가 보관하고 있는 감정서 접수번호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에 부여된 것이었다. 감정서가 위조라고 해서 작품이 위조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하나는 지난해 11월 말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출품된 1970년대 작품 ‘선으로부터 No. 7*****2’와 일련번호가 동일한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알려졌다. 작가가 번호를 매기다 보면 혼동할 수 있고 다작을 하는 경우 같은 번호를 기입하는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화백은 평소 성격이 워낙 꼼꼼해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은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게 모방한 ‘짝퉁’이 시중에 나돌자 이런 말을 했다. “그만큼 내 그림이 인기가 있다는 방증 아니냐. 내 그림을 베껴서 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 뭐라 할 것도 없지. 어차피 티가 나기 때문에 웬만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 이름을 적어 넣은 작품도 아니니까.”

이 화백의 위작과 김 화백의 짝퉁은 사정이 좀 다르다. 김 화백 작품의 모방자는 자신의 이름을 그림에 기록했다. 표절 혐의는 있겠지만 위작은 아니라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반면 위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 화백의 그림에는 이 화백 자신의 서명이 적혀 있다. 이들 작품이 가짜로 판명될 경우 명백한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화백의 위작은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1970년대 그림이 대부분이다. 이 화백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진위 논란에 있는 작품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가짜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혹을 받고 있는 감정서 위조와 동일한 일련번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번호를 매기다 보면 중복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 작가는 난처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가짜가 양산되면 그림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화백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자 한국미술의 자산으로 인정받는 공인이다. 지금 당장의 그림값 하락보다는 좀 더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같은 진위 공방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