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임기 1년반 동안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이 역대 최대 수준의 주택 공급, 분양 실적을 보이며 살아났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부작용이 속출했다. 역대 최대 수준의 가계부채와 최고 수준의 주택 미분양 증가율 등이 위험신호였다. 새로 출범한 유일호 경제팀은 부동산 시장의 부양과 안정 사이의 갈림길에 섰다.
◇부동산 부양 통한 경기 활성화=최 전 부총리는 2014년 6월 부총리로 내정되자마자 “(부동산 시장이) 한여름에 겨울옷(규제)을 입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새 경제팀의 핵심 정책이 ‘부동산 시장 부양’을 통한 경기 활성화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자산 시장이 살아나야 소비 시장도 살아난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최 전 부총리는 취임한 해에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완화 등 네 차례에 걸친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내놓았다. 시장이 반응했다. 최 전 부총리 취임 전 1년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 거래는 7만5576건에 불과했지만, 취임 후 1년은 50% 정도 늘어난 11만3447건에 달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살아났다.
유일호 부총리는 최 전 부총리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부총리로 내정된 직후 부동산 시장에 대해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주택공급 과잉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 당국이 나름의 대책을 이미 발표했고 유효해지기 때문에 문제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곳곳에서 포착되는 위험 신호=유 부총리의 장담과 달리 위험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가계부채가 폭증했다. 최 전 부총리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이란 게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어서 사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720조원 수준이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166조원까지 급증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480조원으로 전체 가계부채 중 40% 정도를 차지한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상환지출 비율은 전 분기(35.4%)보다 6% 포인트 상승한 41.1%를 나타냈다. 100만원 벌면 41만원 정도는 빚 갚는 데 들어간다는 의미다. 당연히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전문가들도 가계부채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0월 경제전문가 402명을 대상으로 가계부채 수준에 대해 물은 결과 이 중 94.1%는 ‘현재 가계부채 총량이 높다’고 답했다.
미분양 급증도 위험 신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한 달 전보다 54.3%(1만7503가구) 늘어난 4만9724가구로 조사됐다. 1998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 증가율이다. 특히 수도권은 미분양 주택이 전월보다 70.6%(1만1002가구) 늘어난 2만6578가구를 기록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시장에 신규 주택이 공급된 결과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미분양 주택량이 과거 7만 가구에 달할 때보다 낮다는 점에서는 공급 과잉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1, 2년 후에 역대 최대 주택 공급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책 전환점 필요한 때”=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책 방향도 선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경제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가격을 올려 자산의 거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경제 주체들이 자산이 늘었다고 착각하게 하는 부동산 부양 정책이 아닌, 실제 소득을 늘리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도 “이미 주택 공급 과잉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건설 시장이 알아서 공급을 줄이는 자정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분양아파트 입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정책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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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