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의 신년 담화엔 ‘남 탓’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심법안 처리에 손놓은 국회를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며 야당을 탓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3년 만에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고 정부와 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새해 들어서도 여야 지도부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자기 목소리만 내다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공개석상에선 “어떤 대의명분도 민생보다 우선하지 못 한다”고 수없이 말하면서도 공천과 당권투쟁 외엔 다른 관심사가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대통령 역시 국회에 대한 설득과 포용 없이 압박만으로 국정을 풀어가려 하면서 행정부 수장의 품위를 잃고 있다. 정국은 칼바람 부는 날씨만큼이나 얼어붙고 있다.
“새누리당 꼼수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
“야당의 ‘꼼꼼수’는 자신들의 무책임·무관심·무기력을 숨기려는 기만전술이다.”(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양당 원내 사령탑이 19일 각각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안 그래도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여야 관계는 새누리당의 국회법 개정안 ‘단독 상정·셀프 부결’ 사태 이후 더 얼어붙었다. 지난해 정기국회와 12월 임시국회에 이어 1월 임시국회마저 파행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한 반성은 없었다. 입만 열면 ‘국민 우선’ ‘민생정당’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기득권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뜻대로 안 될 땐 ‘네 탓’으로 돌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법 개정 대치 격화=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을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가 요구하면 국회의장이 안건을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심사기간 지정) 요건을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여야 합의로 제한한 2012년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망국법’ ‘야당결재법’이라고 여론전을 펼치다 전날 개정을 위한 실제 행동에 들어갔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상정한 뒤 곧바로 부결시켰다. 상임위가 부결시킨 법안에 대해 의원 30명이 요구하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87조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쟁점법안 처리에 나서지 않는 야당을 압박하고, 야당이 끝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직권상정을 통해 여당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더민주는 여야 협상 및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을 들고 나왔다. 이 원내대표는 “입으론 여야 협상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을 억압하는 새누리당의 작태는 앞에서 웃으면서 등 뒤에 칼 숨기고 찌를 기회를 엿보는 폭력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은 (운영위) 의결을 무효화하고 원유철 원내대표는 공개 사과해야 한다”며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 의사일정과 관련한 어떤 협의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특히 야당이 운영위에 참석해 개정안 폐기를 저지하거나,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해 다시 운영위 법안심사소위로 끌고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도 아예 불참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야당도 국회선진화법의 폐해를 알고 이심전심으로 개정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운영위 회의에 불참한 것 아니냐”고 했다.
◇선거구 획정·쟁점법안 1월 국회에서도 불발되나=여야가 강 대 강으로 부딪히는 사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작업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와 정치 신인이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한 예비후보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에 손을 놓고, 계속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치 불신을 넘어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정치 무관심 속에 현역들만 프리미엄을 누리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노동개혁 4법 등 쟁점법안 역시 1월 임시국회 처리는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많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대화·타협 사라진 국회, “꼼수” “꼼꼼수” 여야 충돌… 말뿐인 민생 기득권에 골몰
입력 2016-01-19 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