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19일 “잘못된 법을 고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개정안 셀프 폐기’라는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현행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 제동을 건 셈이다.
하지만 국회 정상화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 의장의 ‘정치력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운영의 ‘키’를 쥔 정 의장이 중재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무위(無爲) 국회’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정 의장의 ‘친정’인 새누리당에선 자신들의 요청을 여러 차례 묵살했던 정 의장을 성토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됐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정 의장이 청와대의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의 직권상정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정 의장이 유권자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방안을 선거구 획정 및 법안 협상 테이블에서 검토되도록 한 것 역시 도마에 오르내렸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이 ‘안철수 신당’으로 간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라면 의장이 바로 (박 사무총장을) 퇴직 처리해야 한다”면서 정 의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정 의장도 국회선진화법이 ‘국회후진화법’임을 잘 알고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야당은 정 의장이 ‘중립적 스탠스’를 계속 취하기를 기대하면서도 국회의 입법 기능을 마비시킨 선진화법의 보완 필요성을 인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우리 당도 (국회선진화법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등을 처리하려고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의 자동 부의 조항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했던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의 달콤한 열매는 모두 따먹고 이제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이를 바꿔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좌고우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 의장의 애매한 스탠스 때문에 19대 국회가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는 말도 나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 의장을 맹비난했다. 그는 “금의야행(錦衣夜行)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거닌다는 뜻인데 겉멋만 들어 보람 없는 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스타일리스트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또 “국회가 이렇게 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종국적인 책임은 국회를 운영하는 국회의장에게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19대 국회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장고(長考)에 들어간 모습이다. 정 의장 자신이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강력하게 반대했었지만, 의장으로서 소신으로 지켜온 여야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여당의 요구를 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 의장은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 개정을 위한 본회의 개의 여부에 대해 “내가 심사숙고하는 중”이라며 “아직은 내가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니다”고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정의화 ‘애매한’ 스탠스… 다시 한번 비판 도마에
입력 2016-01-19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