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의 신년 담화엔 ‘남 탓’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심법안 처리에 손놓은 국회를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며 야당을 탓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3년 만에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고 정부와 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새해 들어서도 여야 지도부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자기 목소리만 내다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공개석상에선 “어떤 대의명분도 민생보다 우선하지 못 한다”고 수없이 말하면서도 공천과 당권투쟁 외엔 다른 관심사가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대통령 역시 국회에 대한 설득과 포용 없이 압박만으로 국정을 풀어가려 하면서 행정부 수장의 품위를 잃고 있다. 정국은 칼바람 부는 날씨만큼이나 얼어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도 ‘여의도 정치’와 멀찍이 떨어져 계속 ‘국민’에게 초점을 맞춘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가 국민을 외면하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국민 여론의 힘으로 국회를 압박하겠다는 속내다.
박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국민들을 소외시키는 상황”이라며 “국무총리와 전 국무위원은 심기일전, 국정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이 언급엔 국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전력을 쏟았던 노동개혁 등의 결과물이 입법 지연으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권 불신은 더욱 커졌고, 따라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특유의 생각을 더욱 굳혔다는 얘기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국민’을 언급하는 횟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늘었다. 정치권에 대한 비판 수위와 강도가 높아질수록 국민을 많이 언급한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정치권, 특히 야당의 국정 협력이 어렵다면 앞으로 여론 결집을 통해 정치권을 직접 변화시키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국민”이라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의 전날 입법촉구 서명에 대해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겠느냐”고 심경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압박 강도를 높이는 직접적 원인은 경제활성화 법안, 노동개혁 법안의 입법 표류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이 어떤 식으로든 풀리지 않으면 박 대통령의 국회 비판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른바 ‘대통령의 거리정치 참여’ 역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회 무시 행보가 계속 이어질 경우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행정부·입법부 간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갈등과 반목’만이 남아 정치 전체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 정치의 고질인 대결과 갈등이 오히려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정치권 인사는 “삼권분립 제도 자체가 각부의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런 요소들이 우리 정치의 기본 요소”라며 “대통령이 어렵더라도 국회에 끝까지 협력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정치·경제 상황에 직면했더라도 제도 내에서 국정과 관련한 호소와 압박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또 박 대통령의 ‘여의도와의 소통’ 노력은 역대 정권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지만 정치권 시각은 정반대다. 소통 대신 주문과 지시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거리정치’ 대신 재정·경제명령, 임시국회 소집 요구 등이 합리적인 카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편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비리가 적발됐을 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치 않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실효적인 조치’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만약 이번에도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이 도출되지 못한다면 5차, 6차 핵실험을 해도 ‘국제사회가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북한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거리 정치’ 참여 대통령, 국회 압박 ‘국민의 힘’ 호소… 민주주의 정치 체제 훼손 우려
입력 2016-01-19 22:07 수정 2016-01-19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