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채화로 다가오는 전북 고창의 풍경

입력 2016-01-21 04:13 수정 2016-01-26 09:20
전북 고창의 모양성(고창읍성) 성벽이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소나무 숲 사이로 달아나고 있다. 지난 14일 하얀 눈을 뒤집어쓴 성 내부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꼿꼿하게 서 있는 맹종죽림.
선운산 천마봉에서 본 도솔암과 도솔천 계곡.
모양현(牟陽縣). 모는 보리, 양은 태양을 뜻한다.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 전북 고창의 옛 이름이다. 고창읍성이 모양성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읍성 외에도 고창에는 내로라하는 것이 많다. 고인돌, 선운산…. 눈 내린 날 하얀 이불을 뒤집어쓴 듯한 고창읍성을 보면 마음 한구석을 내려놓게 된다. 수묵화 같은 은은한 멋을 선사하는 선운산도 마찬가지다.

무게 300t이 넘는 ‘동양 최대의 고인돌’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세워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인 청동기 시대. 당시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에 100t이 훌쩍 넘는 돌로 지어진 고인돌이 대거 들어섰다. 고창에서 확인된 것만 2000여개, 죽림리 일대에는 447개다. 이 같은 밀집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고창 고인돌박물관’을 지나 고인돌유적지에 들어서면 아득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옛이야기를 쏟아내는 듯하다. 야트막한 성틀봉과 중봉의 남쪽 사면 아래 고창천의 물길과 평행을 이루며 늘어서 있다. 이리저리 널려 있어 귀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유적지에는 6개의 탐방코스가 마련돼 있다. 1.7㎞ 남짓 거리의 1∼5코스는 평탄한 길을 따라 유적들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1∼5코스의 정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6코스는 고인돌이 5개밖에 없어 지나치기 쉽다. 이곳에 ‘도산리 고인돌’이라 불리는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여기서 돌아서면 고인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곳에서 3.7㎞ 떨어진 운곡서원 인근에 무게만 300t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고인돌’이 있다. 길이 5.5m, 높이 4.5m, 두께 4m의 ‘운곡 고인돌’이다. ‘선사시대에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옮겼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3코스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운곡람사르습지와 운곡고인돌로 가는 길이다. 편도로 1시간가량 걸린다.

편하게 보려면 운곡저수지 쪽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저수지 왼편으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따라 가면 운곡서원에 닿는다. 이곳에서 200여m 떨어진 길 바로 옆 언덕에 거대한 바위가 덩그러니 얹혀 있다. 인근 운곡습지는 우리나라에서 16번째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건강에 행운까지 안겨주는 고창읍성

고창까지 와서 고창읍성 한번 밟아 보지 않으면 고창을 절반밖에 못 본 것과 같다. 읍성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안내판에 따르면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읍성은 높이 4∼6m의 성곽이 약 2㎞ 정도 둘러친 형태다. 동·서·북문과 3곳의 옹성, 동헌, 객사 등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고창읍성 둘레길은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성 자체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바깥 풍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걷는 길이어서 건강을 돌보고 행운까지 기대할 수 있다. 둘레 1684m의 읍성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30∼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주민들은 마실 가듯 아침저녁으로 산책 삼아 성을 돈다.

고창읍성을 돌아보는 코스는 대략 세 가지다. 우선 성곽 위 흙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곳곳에 2008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솔숲이나 맹종죽숲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다음으로 성 밖 외벽을 따라 걷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성벽 안쪽 솔숲길을 따르는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 정문인 공북루로 들어서면 옥사 옆으로 성곽길이 나 있다. 폭 1m 안팎의 성벽은 야트막한 산자락을 타고 오르다가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돌아 나간다. 성곽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반복된다.

성벽 안쪽엔 솔숲이 울창하다. 적게는 50년, 많게는 수백년 수령의 적송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아름다운 숲’ 상을 탄 곳은 작청 등 조선시대 관청 건물 뒤의 소나무숲이다. 용틀임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선인들의 수묵화에 등장했을 법하게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솔숲에 이어 대숲도 조성돼 있다. 1930년대에 조경을 위해 심은 맹종죽림이다. 꼿꼿하게 뻗은 수직 세계의 대숲 사이로 눈발이 날리면 더할 나위 없는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원래 성내에는 22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잦은 병화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70년대부터 차근차근 복원하는 중이다.



‘호남의 내금강’ 선운산의 겨울 풍경

서해와 맞닿은 고창 선운산(해발 355m)은 ‘도솔산’으로도 불린다. 적설량이 많고,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자연풍광도 수려해서 선경(仙境) 같은 설경이 펼쳐지곤 한다. 산세는 크지 않지만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등의 문화유적과 자연절경이 산행의 묘미를 다채롭게 해준다. 산행 코스도 비교적 짧고 수월한 편이다. 아이젠, 스패츠(발목 토시) 등 겨울 산행장비만 갖추면 눈이 쌓여 있어도 걱정 없다. 초입에 봄날의 동백꽃, 초가을의 꽃무릇과 만추의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선운사가 자리 잡고 있다.

겨울철에는 선운사에서 도솔암을 거쳐 천마봉·낙조대에 올랐다가 용문굴을 거쳐 되돌아오는 코스가 선호된다. 도솔천을 따라가며 진흥굴,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도솔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200호) 등을 두루 거친다. 해질 녘에는 서해 낙조도 감상할 수 있다. 편도 약 4.5㎞쯤 되는 이 코스를 돌아보는 데 3∼4시간이 소요된다.

◇여행메모

서해안고속도 고창IC·선운산IC 이용

장수강 풍천장어… ‘셀프구이’ 별미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로 나와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고창읍내로 들어가게 된다. 읍내 끝머리 오른쪽에 고창읍성이 보인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호남선터미널에서 고창까지 고속버스가 다닌다. 고창터미널에선 걸어서 10분 정도면 닿는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고인돌유적지는 고창IC를 나와 주곡교차로에서 아산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고인돌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5분 거리다. 고창읍에서는 4㎞쯤 떨어져 있다. 796번 지방도로로 아산면소재지를 지나 삼거리에서 선운사 방면으로 하갑교를 건너야 한다.

선운산은 선운산IC로 나와 22번 국도를 타고 15분여 달리면 닿는다. 고창IC에서는 19번 국도를 탄다. 선운산IC보다 10여분 더 걸린다.

고창의 별미는 풍천장어다. 당초 풍천장어는 선운산 입구의 장수강에서만 잡히는 장어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장어집은 고창읍성에서 20㎞ 정도 떨어진 선운산 관광단지부터 심원면 하전마을까지 빼곡하게 몰려 있다. 저렴하게 장어맛을 보겠다면 심원면 월산리 ‘심원풍천장어 셀프구이’를 찾아가 볼만하다. 초벌구이한 장어를 흑돌을 깐 철판 위에 굽는다.


고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