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복실] ‘테러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으로 바꾸자

입력 2016-01-19 17:49

새해가 밝았다. 신년 연휴에 해외여행객 급증으로 인천공항이 거의 마비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1년 동안 해외여행을 하는 국민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2013년 1485만명, 2014년 1608만명, 2015년 1900만명 이상으로 급증 추세다.

해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휴대폰에 뜨는 문자는 ‘문제가 생기면 가까운 영사관에 신고하세요’이다. 그런 문자를 받으면 영사관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아 일단은 든든하다. 해외여행 급증으로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테러를 당할 확률도 높아졌지만, 자생적 테러가 국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외국인 방문객 수가 크게 늘어 테러 관련 여행자들의 위장 입국 가능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년 초부터 간담을 서늘하게 한 뉴스도 있었다. 북한 핵실험과 인근 아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 테러 사건이었다. 사실 우리는 테러의 피해를 제일 많이 당한 나라의 하나였지만 이를 쉽게 잊고 산다. 과거 북한은 무장공비를 보내 청와대를 습격했고, 인도양 상공에서 항공기를 폭파시켜 죄 없는 민간인들을 사망케 했으며,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등 빈번하게 테러를 자행했다. 지난 6일 발생한 북한의 핵실험은 이러한 걱정과 우려를 가중시킨다.

요즈음 대테러 전선은 북한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까지 확대돼 전 세계가 들끓고 있다. 테러방지가 그야말로 공통의 숙제가 돼버렸다. 옆집 일이 우리 집 일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방을 위한 정확한 정보 획득과 국제공조가 기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뉴욕의 9·11이나 파리 테러 사건의 원인 중 하나도 국가 간 공조체계 미비로 인한 정보 획득 실패에 있다.

테러 관련 제도는 예방과 보호가 포함된 정책이지만 일부 강력한 규제가 포함돼 있으므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도입되기가 쉽지 않다. 그 절박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호정책의 양면성이다. 미국도 9·11이 일어나고서야 국토안보부라는 조직을 만드는 등 테러방지를 위한 강력한 정책을 도입했다. 9·11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도입되기 어려운 조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130여명이 살상당하는 참혹한 테러를 당하고서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관련법을 만든다고 아우성이다. 다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에 10대인 김모군이 정부도, 부모 형제도 모르게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자기 발로 찾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를 예방할 수 있는 법이 준비돼 있었다면 예방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당 기관에서 김군의 테러범들과의 접촉을 미리 차단했거나, 사전에 인지해 훈방조치로 끝낼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지금 전 세계는 테러방지를 넘어서서 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리고 있는데 우리만 평화로운 듯 태평성대의 무풍지대로 남아있다. “이런 곳 여행가지 마세요!” “외국 여행 시 위험한 일 당하면 영사관에 신고하세요” 같은 문자메시지 가지고는 조직적 국제범죄인 테러를 막기에는 어림도 없다. 이런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은 여야 합의가 안 돼 국회에 한가롭게 계류돼 있다.

국민의 생명보호와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없어야 하는데, 왜 합의가 어려운지 안타깝기만 하다. 테러방지법에는 혹 당할지 모르는 테러 피해자들에 대한 국민을 위한 신체·재산상 지원도 포함돼 있으니 차라리 테러방지법의 명칭을 ‘테러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로 수정하면 어떨까.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이복실(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