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이 하신다

입력 2016-01-19 17:53 수정 2016-01-19 21:25

몸에 장애가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삶이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육신의 장애보다 더 심각한 것이 마음의 장애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에 병이 있는 것보다 훨씬 고치기 힘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은 마음에 병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남도 아닌 친형들이 그를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신매매를 해서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왕자처럼 살다가 갑자기 노예가 된 것입니다. 물을 떠오고, 밥을 짓고, 물건을 날라야했고, 마음대로 먹지도 자지도 어딘가로 가지도 못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전과자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미워하는 형들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지난 일들을 곱씹어 가며 매일 이를 갈면서 복수의 칼을 품고 살아도 모자랄 터인데 51절을 보면 요셉이 결혼을 하고 낳은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로 지었다고 말합니다. 므낫세는 ‘잊었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집안에서 겪은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잊었다’라고 짓고 매일 “잊었다야 밥먹자” “잊었다야 학교가라”하면서 살아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잊게 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요셉으로 하여금 잊게 해주셨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 앞에 자기 속에 있는 억울하고 원통한 응어리를 끄집어 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약으로, 상담으로는 잘 치유되지 않는 문제도 하나님 앞에 꺼내 놓으면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꺼내 놓으면 우리의 고민과 미움도 ‘므낫세’ 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52절은 요셉이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으로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에브라임은 ‘창성하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절대로 에브라임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혼자였고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돈을 모아도 그것은 다 주인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에브라임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노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요셉으로 하여금 창성하게 하시니 요셉이 창성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창성하다는 말은 영어로 ‘프룻풀(fruitful)’ 즉 열매가 많다는 뜻입니다. 좋은 열매를 얻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에브라임’하게 하시니 요셉은 ‘프룻풀’한 사람이 됐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요셉에게 죄를 지을 만한 상황들이 수없이 찾아왔지만 자신을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려운 마음의 병도 고쳐주실 수 있고, 우리의 빈 가지 같은 인생도 열매 맺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고난을 ‘므낫세’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에브라임’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김한덕 목사(논산 강경제일 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