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3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연초부터 숨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대내외 악재에 어느 때보다 국민의 불안이 크다. 유일호호(號)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열악한 재정 등을 감안하면 모든 것을 다 잘할 여건도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올해 3%대 성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저성장 시대 해법을 고민할 때이고, 부동산 시장을 통한 경기 부양과 과도한 가계부채 해결 사이에서 결단을 내릴 시기다. 노동개혁 또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유일호 경제팀은 4월 총선을 의식한 거창한 구호보다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책 색깔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새 경제팀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 경제는 이미 장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 대응 방식은 여전히 단기적인 경기침체 극복에 맞춰져 있다. 이미 위기 상태에 놓인 서민생활 등 가계소득을 지원하는 등의 적극적 분배 정책으로 저성장 시대를 ‘방어’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업 투자·자본 기여도 낮아진 저성장 시대=유일호 부총리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경제가 자칫하면 영구적으로 (성장을) 점프 못하는 상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새 경제팀 수장으로서 장기 저성장 시대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국 경제·사회 전반에서 ‘저성장 시대’는 이미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추정 결과’ 보고서에서 2001∼2005년 연평균 4.8∼5.2% 수준이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15∼2018년 3.0∼3.2%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당분간 과거처럼 4∼5%대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잠재성장률 저하의 여러 원인 중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자본의 기여도다. 한국경제에서 자본 기여도는 2001∼2005년 2.2% 포인트에서 2011∼2014년 1.7% 포인트로 떨어졌다. 기업의 설비·건설 등 투자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풀어 기업을 지원해도 그 효과가 성장률 제고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극복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모든 정책 역량을 재정 조기 집행을 통한 내수경기 촉진과 수출 활성화, 경제 구조개혁 등에 쏟아 ‘3% 성장률’을 달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장기 저성장 시대는 일시적 경기 침체와는 다르다. 한 해 쓰면 효과가 사라지는 재정투입이나 대외 경제 여건이 나쁘면 기대하기 힘든 수출 증대 방안으로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 특성상 수출 회복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적 자원을 집중한다고 해서 수출액이 연평균 10∼20% 늘어나길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기업들은 많은 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꺼리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서기보다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 과실을 따먹으려고만 하거나 이전투구식 경쟁기업 영토 빼앗기에 혈안이 돼 있다.
◇저성장 충격 보완 위한 분배정책 고민 필요=새 경제팀이 기업 투자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가계소비 주도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성장 정책의 동력을 기업투자 엔진에서 가계소비 엔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임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일성으로 가계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오히려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계 상황은 크게 위축됐다.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고 있고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저성장 심화는 소득 양극화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에 따른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1990년 0.256 수준에서 2014년 0.2777까지 상승했다.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간 불균형도 확대되는 추세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기업소득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반면 가계소득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1990년대 기업소득 비율을 앞섰던 가계소득 비율은 현재 완전히 역전됐다. 강환구 한은 모형개발팀장은 18일 “가계와 기업, 소득계층 간 불균형 누적은 경제 전반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제약한다”면서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등 경제 하부구조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가계부채 부담으로 중산층의 소비 여력도 낮아졌다.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형 국책사업에 투자하는 정부의 재정 일부를 소득 지원에 쓸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한다’는 것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성장을 하더라도 포용적 성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유일호號에 묻다 <上>] 수출·내수만 올인 말고 ‘분배 카드’도 필요
입력 2016-01-1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