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 기획사들은 중국 시장을 잘 이해한 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가야 합니다. 한국의 여러 회사들과 교류했는데, 중국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더군요. 한국 기업이 중국을 판단할 때 매출액만 보는 건 아쉽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2015 서울국제뮤직페어’에 참석한 리우신 타이허음악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말이다. 중국 음악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기획사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수차례 지적했었다. 그러나 ‘쯔위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어떤 문제가 내재돼 있는지 짐작조차 못했다.
K팝 수출에 있어서 리스크 관리의 허점은 신인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 사태를 통해 민낯을 드러냈다. 발단은 이랬다. 지난해 11월 22일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쯔위가 다른 멤버 3명과 출신 국가를 소개하며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 TV 방송에선 편집됐으나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대만 국기는 방송사 측이 준비한 것이었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장면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인터넷에 노출된 것이다. 방송사도, JYP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셈이다.
결국 한 달여 뒤 문제가 터졌다. 지난 8일 대만 가수 황안이 자신의 웨이보(중국 SNS)에 “대만 독립세력을 부추긴다”며 쯔위의 방송 내용을 비판하면서부터다. 즉각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쯔위와 JYP에 대한 반감 기류가 생겼다.
당황한 JYP는 공식 홈페이지와 박진영 대표가 두 차례 사과를 했다. 중국 소비자들을 향해 ‘납작 엎드린’ 사과였다. 15일에는 웨이보와 JYP유튜브 채널에 쯔위가 직접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해협양안이 한 몸이며 저는 제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사과하는 동영상을 내보냈다.
하지만 발 빠른 대응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특히 16세 쯔위에게 조국을 부정하는 말을 하도록 만든 것은 JYP에 대한 한·중·대만 팬들의 분노만 키웠다.
JYP는 18일 “쯔위의 입장 발표에 오해가 있다. 개인의 신념을 회사가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쯔위가 미성년자이므로 처음부터 부모님과 상의해 발표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JYP가 책임져야 할 일을 쯔위 개인의 판단으로 떠넘기려 한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한류 최대 시장인 중국의 역사, 정치, 문화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JYP 측도 시인했다. 박진영은 사과문에서 “어느 정도 심각한 일인지 본사 스태프도, 어린 쯔위도, 저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돈이 되는 시장만 보고 뛰어들었을 뿐 돈을 쓰는 사람들의 성향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한 음악 기획사 관계자는 “솔직히 이런 상황에 대비하면서 다국적 아이돌 그룹을 꾸리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쯔위 사태가 많은 기획사에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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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18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