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를 갖다 붙인 것처럼 생긴 주황색 긴 부리, 검은 목과 등에 대비되는 흰 배, 분홍빛 다리를 가진 검은머리물떼새는 다른 새와 구별하기가 무척 쉽다. 16일 오전 충남 서천군 장항송림 앞 갯벌을 찾은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 중인 검은머리물떼새 50여 마리를 만났다. 이들은 얇고 긴 부리를 조개나 굴 따위의 껍질 속으로 집어넣어 속살을 파먹는다. 그래서 멋진 영어명칭이 굴사냥꾼(oystercatcher)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돼 있다. 마도요와 흰뺨검둥오리, 홍머리오리도 함께 보였다.
서천갯벌과 유부도에는 이들 외에도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가창오리, 큰기러기, 알락꼬리마도요 등 많은 멸종위기 조류들이 깃들어 있거나 철마다 찾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은 넓적부리도요로 전 세계 개체수가 300마리(추정)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11마리가 지난해 9∼10월 이곳에서 관찰됐다. 서천갯벌은 2000년대 중반 장항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매립될 뻔했으나 당시 새만금 방조제 공사 이후 생물다양성이 높은 이곳을 해양생물과 새들의 대체서식지로 살려두자는 여론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이 갯벌에 살아남거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철새들을 내쫓는 사람들도 있다. A방송은 최근 유부도에서 검은머리물떼새 무리 위로 드론을 띄웠고, B방송은 고창 동림지의 가창오리떼가 비상하는 모습을 드론을 통해 찍어 뉴스시간에 내보냈다.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을 사람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먹이활동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행만을 하려고 한다. 즉 죽지 않기 위해 나는 것이다. 따라서 새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 철새를 촬영할 때에는 멀리서 하되, 조명이나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가창오리의 군무와 검은머리물떼새를 계속 보고 싶다면 탐조활동의 기본 수칙들을 지켜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철새 관찰수칙
입력 2016-01-18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