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54) 배우 데이비드 보위

입력 2016-01-18 17:33
‘메리 크리스마스…’ 포스터

정초부터 부음이 들려왔다. 영국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다. 향년 69세. 요즘 장수 추세에 비추면 너무 이른 죽음이어서 애석하다. RIP(Rest In Peace: 평화롭게 잠들다).

이는 그가 단지 가수가 아니라 배우까지 겸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팝 음악계에 끼친 거대한 영향력과 공헌에 가려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보위는 나름대로 괜찮은 배우였다. 그는 가수로 성공하기 전 일찍부터 아방가르드 연극과 마임 수업을 받았다.

영화 데뷔는 1967년이었으나 주연급으로 처음 출연한 영화는 76년 니콜라스 로에그가 연출한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였다.

지구에 파견된 외계인을 연기한 이 영화로 호평받은 보위는 이어 83년 수정주의적 흡혈귀 영화인 토니 스콧 감독의 ‘헝거’에서 카트린 드뇌브, 수전 서랜던과 공연했고, 같은 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된 뉴질랜드군 장교 역할을 맡았다. 오시마는 브로드웨이 연극 ‘엘리펀트 맨’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보위(그는 80∼81년에 157회 공연했다)를 보고 반해 자신의 영화에 그를 발탁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작은 마귀 고블린의 왕 역을 맡은 ‘래비린스(86)’를 거쳐 마틴 스코세이지의 문제작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88)’에서 본디오 빌라도를 연기했다. 그런가하면 의문에 싸인 FBI 요원(데이비드 린치, 트윈 픽스·92)이나 이탈리아 서부극의 악당(조반니 베로네시, 총잡이의 복수·98)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영화에 다양한 역할로 출연했지만 배우로서의 보위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적어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한 편은 꼭 보기 바란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연기한 명우 앨릭 기네스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 근처까지는 간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