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여당의 거물급 총선 후보들이 17일 각각 서울 종로와 마포갑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에게 ‘험지(險地) 출마’를 제안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교통정리’가 먹혀들지 않으면서 여당의 총선 전략은 초반부터 스텝이 꼬인 모양새다. 이들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공천 경쟁자들도 강력 반발하고 있어 ‘적전(敵前) 분열’ 양상까지 연출되고 있다.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오 전 시장은 서울 구로을 등 야권 지지세를 보이는 다른 지역에 출마해 달라는 김 대표의 요청을 뿌리쳤다. 그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은 종로에서 지난 5년간 19대 총선 등 네 번의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다”며 “선거의 유불리만 따진다면 나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했다. 오 전 시장은 “수도권과 나아가 전국 선거 판세를 견인하는 종로에서 반드시 승리해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6선 고지를 노리는 종로에서 승리해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에선 박진 전 의원과 종로 당협위원장인 정인봉 전 의원 등 당내 경쟁자와의 ‘진흙탕 싸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 뒤 곧바로 마이크를 잡은 박 전 의원은 “오 전 시장은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해 박원순 시장에게 시장직을 넘겨준 장본인”이라고 했다. 또 “당 지도부의 방침이나 전략적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은 후보는 해당행위를 하는 셈”이라며 “종로는 대권을 위한 정거장이 아니다”고 했다.
이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안 전 대법관의 출마 기자회견도 순탄치 않았다.
당초 자신의 출생지인 부산 출마를 고려했던 안 전 대법관은 “마포는 제 인생에 ‘디딤발’이 됐던 곳으로 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중학생 시절 서울 마포구로 전학해 왔다는 ‘인연’을 부각시켰다. 마포갑은 더민주 노웅래 의원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안 전 대법관은 “국민의 신뢰 없이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을 항상 가슴에 새기겠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자회견장에는 새누리당 마포갑 당협위원장인 강승규 전 의원과 지지자 30여명이 찾아와 항의했다. “공정 경선” “마포갑이 험지냐” 등의 고성과 막말이 쏟아져 나오고 몸싸움도 벌어지면서 회견장은 난장판이 됐다. 강 전 의원은 “김 대표도 안 후보의 (마포갑) 출마에 반대했다”며 “(안 전 대법관의) 책동은 도둑질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김 대표가 제안한 지역에 마포갑이 있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일일이 말하기 어렵지만 결정이 그렇게 된 것으로 안다”면서 “(마포갑이) 진정한 험지”라고 했다. ‘영입 인사’에 대해선 당 최고위원회의 논의 등을 거쳐 ‘100% 국민여론조사’ 방식으로 경선이 치러질 수 있지만 강 전 의원 등의 반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안 전 대법관은 대검 중수부장, 서울고검장 등을 거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 5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고액 수임료’ 등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한 바 있다.
김무성 대표는 두 인사의 출마 선언에 대해 “본인들의 최종 결정을 존중한다”며 “당의 공천 룰에 따른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공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안대희·오세훈 엇나간 ‘험지 출마’… 김무성 리더십 꼬였다
입력 2016-01-17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