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거장이 버린 컷 밀착인화지 속 순간들… 서울서 ‘매그넘 콘택트 시트’展

입력 2016-01-17 20:49
프랑스 사진작가 마크 리부의 유명한 사진 ‘에펠탑 페인트공’. 이 장면을 포착하기까지 페인트공이 작가의 요구에 따라 무수한 포즈를 취했음을 왼쪽의 밀착인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매그넘 포토스 제공

고공 에펠탑에서 페인트칠을 하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순간. 페인트공의 동작이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고 날렵하기 그지없어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프랑스 사진작가 마크 리부의 1953년 작 ‘에펠탑 페인트공’은 사진작가가 결정적인 한순간을 포착한 대표적 작품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밀착인화지를 보면 이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작가의 요구에 따라 페인트공은 온갖 포즈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골조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허리를 구부려 작업하기도 하고….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열리고 있는 ‘매그넘 콘택트 시트(Contact Sheet·밀착인화지)’ 전은 한마디로 결정적 한순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국제자유보도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의 대표작가 65명이 남긴 밀착인화지 70여점을 공개한다. 밀착인화지란 필름 한 롤 전체를 순서대로 인화해 놓은 걸 말한다. 사진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이 촬영한 전체 장면을 한눈에 살펴보며 최종적인 선택을 한다. 원고로 치면 초고, 그림으로 치면 습작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전시에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필립 할스먼, 르네 뷔리 등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의 낯익은 명장면과 함께 밀착인화지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명사의 점프 사진으로 유명한 필립 할스먼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찍은 명장면을 보자. 날고 있는 고양이, 아치를 만들며 공중에 흐르는 양동이의 물과 함께 화가 달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점프하는 장면을 순간 포착했다. 밀착인화지로 인해 이 장면의 탄생은 뉴욕 스튜디오에서 조수들이 고양이에 이어 양동이를 던지며 시간차를 계산한 정교한 편집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스페인 내전 때 폐허의 도시 세비야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잡아낸 그 유명한 장면의 뒷얘기도 밀착인화지는 숨김없이 전한다. 작가는 아이들을 여러 각도에서 무수히 찍었다. 최종적으로 고른 장면은 목발 소년이 환히 웃는 모습이 정면에 잡힌 것이다.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기에는 최고의 장면이다. 습작 같은 밀착인화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브레송은 이렇게 말한다.

“밀착인화지는 지워버릴 것과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사진전시회나 사진집은 만찬 초대장과 같다. 따라서 손님이 솥이나 팬, 혹은 심지어 음식껍질 바구니에 코를 들이밀게 해서는 안 된다.”

최종 한 장면에 도달하기 위한 작가의 숨은 노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 역시 시행착오를 거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전시다. 성인 6000원, 학생 5000원. 4월 16일까지(02-418-1315).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