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최초 女총통 된 차이잉원 누구… 대만판 잔다르크

입력 2016-01-17 21:24
대만 총통 선거에서 16일 압승한 민진당 차이잉원 당선자가 수도 타이베이 당사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차이잉원은 8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내며 105년 만에 대만 첫 여성 총통 자리에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사상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등극한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59) 당선자는 입당한 지 11년밖에 안 된 정치인으로 ‘부드럽지만 단호한’ 리더십으로 대만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주인공이 됐다.

◇첩의 자식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차이잉원은 고대 중국 한족 출신의 실향민인 객가인(客家人)과 대만 원주민의 혈통을 갖고 있다. 대만 주간지 ‘상업주간’에 따르면 차이잉원의 아버지 차이제성은 4명의 부인 사이에 11명의 자녀를 뒀다. 차이잉원은 11명 중 막내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자동차정비공장과 부동산, 호텔업 등으로 큰돈을 번 자산가다.

아버지는 차이잉원이 법률을 공부하기를 원했고 차이잉원은 국립 대만대 법학과를 선택했다. 1978년 졸업 뒤 80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 84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해선 국립정치대 법학과와 국제무역과 교수로 재직하며 행정원(대만 정부) 법률 고문 등으로 활동했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굵직한 현안에 기여했다. 1999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양안관계를 ‘특수한 국가와 국가’ 사이라고 새로 정리해 발표한 ‘양국론(兩國論)’ 입안에 깊숙이 관여했다.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민진당 천수이볜 정권 때인 2000년 양안관계 사무를 맡는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 되면서 처음 학계를 떠났다. 대륙위 주임 시절 중국과 소삼통(小三通: 통항·교역·우편거래)을 성사시키며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4년 뒤 2004년 민진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면서 정치에 본격 뛰어들게 됐다. 2006년 1월에는 행정원 부원장에 올랐다.

천수이볜은 차이잉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2008년 대선에서 민진당 정권이 천수이볜의 부패 스캔들로 막을 내리자 차이잉원은 당 주석에 당선돼 수습에 나섰다. 2010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신베이시 초대시장을 노렸지만 이번 총통선거에서 맞붙은 국민당 주리룬 후보에 석패했다. 2012년 1월 총통선거에선 마잉주 총통과 겨뤘지만 또 고배를 마셨다. 당 주석에서 물러난 차이잉원은 백의종군하다 2014년 구원투수로서 당 주석에 복귀했다. 그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대선 재수’의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최초의 여성 총통이 됐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드라이브 취미=그는 평소 조용하고 언론 앞에 나서는 것도 수줍어한다. 캠프 관계자들은 “선거 기간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캠프 안에서도 인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대만 언론들은 이런 그의 성품이 첩으로 살았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것에 대해선 타협이 없는 성격이다. 반대파들은 차이잉원을 ‘쿵신차이(空心蔡)’로 부른다. 항상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속을 알 수 없다”면서 속이 빈 채소로 중국 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쿵신차이(空心菜)’에 빗대서 하는 말이다.

차이잉원은 미혼이다. 미국 유학시절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이 남성이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독신 생활이 길어지자 동성연애자라는 소문도 있다. 차이잉원은 스밍더 전 민진당 주석으로부터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차이잉원은 이런 의혹에 답하지 않았지만 동성결혼에는 찬성해 왔다. 차분한 성품과 달리 자동차 드라이브가 취미다. 타이베이에서 정부 회의가 열리는 핑둥까지 400㎞를 혼자 운전하고 가기도 했다.

타이베이=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