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핵 합의를 성실히 이행했다는 보고서가 채택되면서 미국과 유엔,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16일(현지시간) 이란에 가한 제재를 대부분 해제했다. 미국은 동결시킨 이란의 금융자산 1000억 달러(약 121조5000억원)의 이전을 허용하고 석유수입 억제와 금융거래 제한 등 조치를 철회했다. 이란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은 해외 은행들과 자금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7월 역사적인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된 이후 6개월 만이다.
◇유가 하락 불가피…“배럴당 20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질 것”=이란은 서방의 제재 해제로 당장 원유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이란은 먼저 최대 6000만 배럴로 추정되는 재고를 국제 원유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흐다 알살리 석유수출국기구(OPEC) 이란 대표는 “산유량을 일일 50만 배럴 늘리고 짧은 시일 안에 50만 배럴 더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유 생산량을 현재 280만 배럴에서 380만 배럴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2012년 미국의 국방수권법 시행 이후 중국 한국 일본 터키 일본 등 예외를 인정한 국가에만 일일 100만 배럴 정도를 수출했다. 이로 인해 유가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산유국들의 가격할인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20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이란의 제재 해제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5일 배럴당 29.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배럴당 30달러가 무너진 건 2003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미-이란 37년 만의 적대관계 청산=미국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이어온 이란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켜 중동의 안정을 다졌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로 이어지는 동맹의 축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이슬람국가(IS) 격퇴전과 시리아 사태 해법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이 커졌다.
이란 제재 해제 발표 직전 이란은 미국인 4명을 풀어주고, 미국은 이란인 7명을 석방했다. 석방된 미국인 중에는 제이슨 리자이언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포함됐다. 리자이언 기자는 테헤란 주재 WP 특파원으로 2014년 7월 체포된 뒤 간첩 혐의로 기소됐으며, 미국은 그의 석방을 환영했다. 풀려난 이란인들은 제재 가이드라인을 어긴 기업인 등이다. 미국과 이란의 수감자 상호 석방으로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유엔 안보리 등에서 채택되면서 결정됐다. IAEA에 따르면 이란은 핵물질 98%를 러시아로 반출했으며, 원심분리기 1만2000여개를 해체했다. 핵 프로그램의 동결조치를 상당 부분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재 해제는 원유 수출부터 자동차·보험까지 광범위=이란은 향후 5년간 미국 보잉사와 프랑스의 에어버스로부터 매년 여객기 80∼90대를 사들이기로 했다. 제재 해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그동안 이란은 제재에 묶여 미국과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로부터 여객기를 살 수 없었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크게 미국과 EU가 부과한 것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미국의 제재가 범위도 훨씬 넓고 강도도 높다. 미국은 이번에 이른바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해제한다. 2차 제재는 미국 재무부가 미국 이외 외국기업과 개인에 대해 이란과 거래했을 때 불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미 재무부는 외국인과 외국기업이 미국의 금지대상인 이란의 개인 및 사업체와 무역·금융거래를 하면 미국인 및 미국기업과 무역거래는 물론 금융거래도 할 수 없도록 해왔다.
아울러 원유·가스 거래 제한 및 투자규제를 해제하고, 자동차·보험 관련 산업도 개방한다.
이란으로 정유·석유화학 제품을 수출할 수도 있으며 해운, 조선, 항만 분야 거래, 금·귀금속 거래, 알루미늄·철강·소프트웨어 거래 역시 해제된다.
그러나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국가안보를 위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특별제재 대상과의 거래는 여전히 제한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美-이란 37년 만에 적대관계 청산… 大國 이란 국제사회 등장 유가 하락 불가피
입력 2016-01-17 2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