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話하다] 1982년 난지도, ‘어린이 사역’ 처녀 선생

입력 2016-01-17 21:14
서울 월드컵경기장과 하늘·노을공원. 이를 배경으로 한 수색역 서남쪽의 첨단 빌딩과 아파트들은 오늘 대한민국 발전의 한 상징처럼 우뚝하다.

1970∼80년대 이 일대는 거대한 쓰레기 하치장이었다. 당시 17개 구청이 쏟아내는 쓰레기로 이 일대를 지나기가 힘들었다. 6·25한국전쟁 직후 이 쓰레기 하치장은 난지도라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토질이 좋아 포플러나무가 3년 만에 거목이 됐다. 주민들은 포플러를 베어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팔았다. 한강 본류와 만나는 샛강엔 재첩이 지천이었다.

서울이 커질수록 난지도는 파괴됐다. 1982년 르포를 쓰기 위해 이 하치장에 갔을 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 무색 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호적 없는 주민이 800여 가구요, 전기·수도 없이 사는 집이 20여가구였다. 이들은 쓰레기를 뒤져 재활용품을 찾았다. 그걸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우유곽은 1kg에 70원이었다. 수집된 우유곽은 두루마리 휴지로 재생됐다. 그마저도 수출용이었다. 나는 난지도 참상을 보고 내 영혼의 문신(文身)이 새겨진 것 같았다. 보름 동안 출근하며 우유곽을 수집했다. 쓰레기를 뒤지면 양탄자가 하늘을 날았는데 바로 파리떼 집단 비행이 그리 보였다.

사진은 쓰레기 동네 아이들을 돌보던 나래궁 어린이선교원 관계자와 처녀 선생(왼쪽 아래 아이 안은 사람)이다. 판자집 선교원 뒤로 쓰레기산이 보인다. 이 ‘무너진 바빌론성’에서 복음을 전하려한 그 처녀 선생의 이름을 도무지 기억 못하겠다. 소설 ‘난지도’(1985)로 인간 종말의 현장을 다뤘다.

작가 정연희

필자=1936년생.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수필집 ‘길 따라 믿음 따라’, 시집 ‘외로우시리’ 등 기독교윤리에 입각한 작품이 많다. 한국소설가협회장, 한국기독여성문인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