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비빔밥을 비비며 ‘Learning by doing’(하면서 배운다)이라는 말이 있다고 멘토는 말씀하셨다. 다니는 직장의 특성상 전공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 발령받은 업무는 인수인계를 해줄 전임자는커녕 차근차근 업무를 파악할 시간도 없이 연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3주 안에 사업설명회를 준비하고 30개 단체를 선정해 프로젝트를 돌려야 한다고 투덜대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왕돈가스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는 내게 맛있게 비벼진 멍게비빔밥을 덜어주시며 한 말씀 더 하신다. 미국의 프로젝트 관리의 대가가 쓴 ‘Death March’라는 책을 보면 경험 없는 개발자와 불확실한 판단을 하는 관리자가 만난 ‘죽음의 행진’과도 같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런 힘든 프로젝트에 도전해보는 건 흥미 있는 경험이 아니냐고. 실패해도 실패의 경험이 쌓일 테고 성공하면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테니 도전해보라고.
멋진 말이다. 그러나 늘 문제는 현실과의 괴리 아니던가. 당장 고압 프레스기로 누르는 것 같은 이 압박감과 깨질 듯한 편두통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I can do(나는 할 수 있어!)’를 백 번쯤 외치면 되는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엔 함박눈이 내리고 특유의 향이 고소한 멍게비빔밥은 오늘 유난히 더 맛있다.
돌아보면 충분히 배우고 배운 대로 실행해본 후 맡겨진 ‘업무’는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내게 맡겨졌던 모든 일들은 하면서 배우고 하면서 실패하고 하면서 성공했다. 이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누구 하나 명확하게 가르쳐준 바 없지만 우리는 사랑하면서 배우고 절망하면서 배우고 우리보다 먼저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분들에게서 배우며 살아가면서 살아간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라 하시던 생전의 말씀 깊이 새겨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 생을 건너가시는 선생께 약속드리는 새벽이다.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하면서 배운다
입력 2016-01-17 17:38 수정 2016-01-17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