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된 손녀 미람이는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공연도 잦고 요즘엔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하겠다며 덤빈다. 흉내는 영락없지만 소리가 제대로 날 리 없다. 결국 제 맘대로 안 되니 짜증을 부리기 일쑤다. 충분히 배우고 익히지도 않고 멋만 탐하는 것이 천생 한국인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는 한국인의 DNA인가. 압축성장 때는 ‘빨리빨리 문화’에 재빠른 눈썰미와 날렵한 손재주 등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고급 기술에는 안 통했고 문제 수습에는 태생적 제약이었다. 한 발 더디 가더라도 충분한 계획·대비가 있어야 지속 가능성이 열린다.
성급한 행태는 정부도 다르지 않다. 좋다는 정책은 거의 다 수입했으나 본질에 소홀한 데다 추진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진득하게 극복하려는 후속 조치가 없어 겉돌기만 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는 도깨비방망이를 기대하는 유아적 발상에서 멈춰 있는 듯하다.
연초 들어 청년실업률이 9%를 넘고 고용절벽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고용 문제 해법으로서 여러 수입 정책들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사태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독일에서 수입한 마이스터제도도 그중 하나다.
마이스터제도는 도제식 직업교육을 통한 숙련인력 양성이 핵심이다. 그동안 이 제도는 부분적으로 수용돼 왔다. 상업·공업학교 등의 연원도 직업교육이라는 점에서 관계가 있고, 1998년과 2009년 각각 도입된 특성화고, 마이스터고의 출발점도 그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일·학습 병행제 고숙련 마이스터 과정’도 같은 뿌리다.
문제는 모든 게 형식만 빌려왔을 뿐 제도의 핵심 체계와 방향은 달리 전개된다는 점이다. 원래 마이스터제도는 크게 세 단계다. ①중학과정에 해당하는 직업교육 훈련기관인 레알슐레(Realschule) 등에서 5∼6년 실업교육. ②전문고교(Fachhochschule)에서 기업과 연계된 일·학습 병행식 도제제도를 통해 국가인증의 기능사 자격을 따고 졸업해 훈련받던 기업에 주로 취업. ③기능사로 3∼4년 근무 후 국가인증 시험을 거쳐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는 내용이다.
독일에서 마이스터 자격 취득자는 매년 수만명이며 이들은 대졸 엔지니어와 대등한 지위, 생활수준이 보장된다. 한국에서 선호되는 직업경로(career path)인 ‘일류대 졸업-대기업 입사’와는 전혀 다른 통로다. 일찍부터 기업과 연계한 직업경로를 따로 구축·운영한 것이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고 대졸자·청년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는 비결이다.
한국은 어떤가. 우선 첫째 단계는 아예 없으니 그만두고라도 전문고교 과정인 특성화고·마이스터고는 기업과 연계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일·학습 병행 훈련체계 자체가 없다. 당연히 졸업 후 취업 연계가 쉽지 않다. 독일의 경우 종업원 수 250명 미만 중소기업 거의 대부분이 직업훈련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셋째 단계는 둘째 단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탓에 마이스터 과정으로 연계도 안 돼 경로 단절이 문제다. 지난해 마련된 ‘∼마이스터과정’ 대상도 겨우 수십명이다. 나름 성과를 내겠지만 그 정도로는 물꼬를 바꿀 수 없다. 사실상 한국의 숙련인력 직업교육은 초보적인 인력 양성에 멈춰 있다.
‘일류대 졸업-대기업 입사’라는 유일 직업경로 선호는 나쁜 연쇄를 낳았다. 대졸실업 급증에도 여전히 높은 대학진학률, 사교육비 과잉부담 탓에 노후 빈곤 및 출산 기피, 내수 위축 등.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제대로 된 마이스터제도가 대안이다. 길게 보면서 미래 경쟁력의 출발점을 직시해야 한다. 개인, 국가, 애·어른 할 것 없이 새겨야 할 말이다. 씨 뿌리지 않는 한 수확은 없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마이스터제도는 미래경쟁력이다
입력 2016-01-17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