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 미래자동차그룹 회장 오현수, 신정당 대통령 후보 장필우는 별장에서 섹스파티를 벌인다. 동영상도 찍고 비자금 장부도 복사해둔다. 자신들의 커넥션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내부자들 중에서 밖으로 튀어나가는 이들이 생기면 동영상과 장부와 깡패들이 단속을 한다.
현실에서 이런 커넥션이 있다면 영화보다는 더 합법적이고 깔끔하고 우아하겠지만, 불안감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으니까.
파생금융상품은 원래 가진 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보험이었다. 주가가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 환율이 바뀌어 돈 가치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덜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불안이 낳은 파생금융상품이 다시 탐욕과 결합했다. 이미 1994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파생금융상품을 ‘환상적인 도박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탐욕과 불안의 결합은 더 큰 불안을 가져왔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과 유럽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파생금융상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1세기의 경제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70년대 오일쇼크,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위기가 지나도 좋은 시절은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무하마드 앨 에리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저성장·저소득·저수익과 불안이 지속되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를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이라고 불렀다.
고성장·고소득의 올드노멀을 누려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은 억울하다.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한국이 싫어서’란 소설이 베스트셀러다. 이미 이 땅의 젊은이들도 그 어떤 내부자들 못지않게 불안에 강력하게 포섭돼버린 듯하다. 2000년 전, 오랜 가난과 타락한 지도자, 제국의 식민통치에 지친 이들에게 예수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31)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한마당-김지방] 불안의 경제학
입력 2016-01-17 18:15 수정 2016-01-17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