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의 성찬(盛饌)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 말이 더욱 풍성해졌다. 선거판에서의 한마디는 때로 국면을 바꾸는 중요한 전기가 됐다.
“우리가 남이가”와 “대전은요”는 대한민국 선거역사에서 뺄 수 없는 어록이다. 14대 대선 일주일 전인 1992년 12월 11일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부산지역 기관장들과의 모임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이 사실이 알려져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후폭풍은 오히려 영남 표를 결집시켜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4회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임박했던 2006년 5월 20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 중 괴한의 칼에 뺨을 60바늘 꿰매는 큰 상처를 입었다. 2시간 수술 끝에 마취에서 깬 그의 첫마디는 “대전은요”였다. 열세였던 대전시장 선거를 걱정하는 이 한마디가 대전에서의 승리는 물론 ‘위기에 강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오는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주머니 속의 공깃돌’이란 말이 회자된다. ‘칠종칠금(七縱七擒)’처럼 상대를 쥐락펴락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실세들이 후보들의 출마 지역을 이리저리 쉽게 돌리는 것을 빗댄 말이다. 안대희 오세훈 등 중량급들조차 휘둘렸다.
압권은 대구다. 달성군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진박(眞朴)’에 밀려 며칠 만에 대구 중·남구로 지역구를 옮겼다. “달성군민의 특명을 받은 곽상도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출마선언을 하자마자 “중·남구 주민들을 위해 일하게 해 달라”고 말을 바꿔야 할 처지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때도 선거 20여일 전까지 대구 지역구 12곳 중 6곳을 전략공천으로 묶어놓고 후보들을 저울질했다. ‘막대기를 꽂아도 된다’는 인식이 당 지도부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지역 여론이 발끈하고 있다. 매일신문, 영남일보 등은 ‘한심한 후보재배치론’ ‘서울TK의 공습경보’라며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도 ‘이번에는 다르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주머니 속의 ‘공깃돌’이 ‘송곳’(낭중지추·囊中之錐)이 될 수 있을까.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주머니 속 공깃돌
입력 2016-01-15 17:35 수정 2016-01-15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