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일 양국 간 때아닌 ‘오찬’ 논쟁이 불붙었다. 정상회담 후 두 정상이 점심을 함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양국 정부와 언론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을 마친 뒤 10여명의 재한 일본 경제인과 인근 한정식집을 찾아 한우 꽃등심과 양념갈비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일행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모두 비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본 언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지 않은 이유’를 두고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산케이(産經)신문의 보도다. 한국 측이 “위안부 문제를 연내에 타결한다는 데 합의하면 오찬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이를 일본 측이 거절했다는 것이다. “점심 따위로 국익을 깎아내릴 수 없다”고 아베 총리가 측근들에게 한 발언 내용도 소개됐다. 이런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오찬을 제안한 건 도리어 일본 측이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한 끼 점심식사를 둘러싼 논쟁은 일반인 입장에선 한가롭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외교적 논리가 숨어 있다. 정상은 단순한 개인이 아닌 한 국가의 대표인 이상 외교 무대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외교 당국이 자국 정상 또는 대표의 의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외교 의전은 인류 역사에서 국가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존재해 왔다. 이미 기원전 2675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외교 의전 등을 담은 ‘프타호텝 교훈서’가 작성된 바 있다. 파라오의 신하인 프타호텝이 왕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쓴 책이다. 기원후 10세기에는 비잔틴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905∼959)가 ‘비잔티움 의전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사소한 의전이 국제사회의 세력 변화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19세기 중반 독일이 통일되기 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각축전을 벌일 당시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총리가 펼친 ‘위신 투쟁’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독일 내 17개국으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에는 기묘한 관습이 있었다. 바로 오스트리아 대표에게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 있었다. 이는 나폴레옹 몰락 후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담배 유통을 독점한 이래로 굳어진 관례였다. 그런 자리에서 비스마르크 총리는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가?”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더니 연방의회 의장에게 불을 청해 붙였다. 당시까지 연방의회에 참석한 대표단 중에는 흡연자가 많았지만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단순한 행동은 곧바로 외교 문제로 치달았다. 각국 대표들이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며 “함께 담배를 피워야 하는가”라는 훈령을 청한 것이다. 각국이 강국 오스트리아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대표만 반년 가까이 의회에서 담배를 피웠다. 결국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더니 본국의 허락을 받지 못한 대표들과 비흡연자를 제외하곤 모두가 의회에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 이 사건은 독일 내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儀典, 외교의 한 수… 국가 간 의전의 세계
입력 2016-01-16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