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회차 5만3415인분. 지난 8년 동안 교회 로비에 설치된 사랑의 뒤주를 통해 나눈 ‘사랑의 쌀’ 수급 통계치이다. 필요한 분들에게 알량한 쌀을 드리며 괜한 자존심이나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한 분 한 분 손잡아 드리며 온기를 느낀다. 이어 ‘내게 강 같은 평화’로 노래하고, 오늘도 건강주심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덧 사랑의 쌀 나누기는 우리 마을의 문화가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사랑의 뒤주’가 시작된 데는 배경이 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노부부 가정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주일에 뵐 수 없기에 알아보니 밥맛이 없어 식사도 못하고 시름시름하신다는 것이다.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어 교우가 운영하는 보신탕집으로 모시고 갔다.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겠다 하시던 분들이 얼마나 음식을 맛있게 드시던지…. 거뜬히 그릇을 비우신다.
그리고 노부부는 씩씩하게 교회생활을 회복하셨다. 입맛이 없던 것이 아님을 깨달은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자라면서 끼니 거른 경험이 없는 나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생각할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교회 인근에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있나 살피게 됐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인근에 끼니 거르는 사람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사택 아래층에 ‘주민케어센터’ 간판을 붙이고 끼니 양식이 필요한 분들이 퍼갈 수 있는 쌀 항아리를 준비했다. 지금은 사회관 건물에 이 센터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누구나 퍼갈 수 있는 뒤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뒤주 쌀을 퍼다 떡 해 잡수시는 분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임원회에서 논란이 되었고 직접 드리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받는 분들이 어색해 하지 않을까 염려됐으나 지금은 마치 사랑방 나들이 하듯 찾아오신다. 나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용봉사, 반찬나눔 등으로 마을 공동체를 받들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주간 돌봄을 하고, 또 필요한 것을 공급해 드린다.
추수감사절마다 과일바구니 대신 ‘감사의 쌀’로 강단을 장식하는 것은 우리 교회 전통이다. 사순절 특별새벽기도 헌금과 함께 사랑의 쌀을 나누기도 한다.
아현감리교회는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를 통해 시작된 교회다. 선교 초기 예배당 세우기가 쉽지 않을 때 ‘애오개시약소’로 출발했다.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였다.
부끄러운 이야기. 어느 날 저녁 운동한답시고 서울역광장을 돌아 숭례문, 광화문을 거쳐 돌아오던 길이었다. 한데 이른 새벽 지하도에서 밥을 나누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따뜻한 밥을 나눠주려고 애쓰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밥을 준비하기 위해서 몇 시에 일어납니까?”
“2시부터 준비합니다.”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거처가 노원구라는데…. 그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나홀로’ 세대가 많아진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는 시대이다. 자식이 있어도 남남이나 다름없는 시대, 부부라도 분주한 일상으로 따뜻한 밥을 나누기 쉽지 않은 시대, 사람을 초대하여 밥상 마주하는 일을 거북하게 여기는 시대, 홀로 살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없을 때 더 외로워하는 시대다. 이제야 말로 목사가 ‘따뜻한 밥 한 끼’로 다가서야 할 때가 아닌가?
조경열 목사(서울 마포 아현감리교회)
◇약력=감신대 졸업, 미래교회연구원장, 북한회복감리교회연합 대표, NCCK 실행위 3·1운동 100주년기념준비위원장.
[따뜻한 밥 한 끼-조경열] “입맛 없어 못먹겠다…”
입력 2016-01-14 19:59 수정 2016-01-21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