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古木’ 엄앵란의 여유

입력 2016-01-14 17:26

엄앵란(80)과 신성일(79)의 결혼은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1964년 11월 결혼식이 열린 서울 워커힐호텔은 3000여명의 축하객과 구경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두 사람이 그해 히트 영화 ‘동백아가씨’와 ‘맨발의 청춘’에서 콤비를 이뤄 인기 절정을 구가해서다. 하지만 톱스타 엄앵란의 결혼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신혼 초기 시집살이는 혹독했으며, 남편 선거 빚 갚느라 대구에서 18년간 식당일을 해야 했다. 2년 동안 남편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더 힘든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 신성일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람둥이 아닌가. ‘아내는 한 명이지만 애인은 여럿일 수 있다’는 말을 자랑삼아 하고 다녔다. 자서전을 통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김영애(연극배우·사망)가 내 아이를 임신했었다”고 공개 고백해 엄앵란이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엄앵란은 그러나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왕년의 은막스타라기보다 후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부부관계, 자녀교육 등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놔 공감을 산다. 별거 중인 남편에 대한 얘길 하면서도 욕하기보다 “잘난 내 남편”이라고 감싸는 걸 보면 천생 조강지처다.

그런 엄앵란이 최근 TV 건강프로그램 녹화 중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13일 밤 방송에서 “아이고 80 넘은 고목나무가 암 걸렸다는데, 뭐 괜찮아요. 초기에 발견한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요”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내심 엄청 불안할 텐데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 데서 원로배우의 연륜을 느끼게 했다.

엄앵란은 언젠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꽃피는 봄인가 싶으면 어느새 겨울이고, 추운 겨울인가 싶으면 또다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와요. 인생에서 희망의 끈은 절대 놓으면 안 됩니다.” 그는 15일 서울대병원에서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을 받는다. 빠른 쾌유를 빈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