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겠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이른바 ‘웰다잉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뒤 통화한 서울대병원 통합암센터 윤영호 교수가 던진 첫마디였다. 윤 교수는 웰다잉법의 제정과 국회통과에 크게 기여한 인사 중 하나다. 그는 지난 25년간 대한민국의 형편없는 ‘죽음의 질’을 연구해 왔고 이는 웰다잉법 제정의 자양분이 됐다.
웰다잉법은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숱한 논쟁을 거쳐야 했다. 막판에는 한의사들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참여 문제를 놓고 발목이 잡히는 듯했다. 윤 교수는 그때마다 언론 등을 통해 웰다잉법 제정의 필요성을 적극 호소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최종적으로 국회 문턱을 넘자 그제야 “한숨 돌렸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내비쳤다. 그리고 통화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법이 통과됐지만 벌써부터 여러 우려가 나온다.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그 말에 백분 동의한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웰다잉법은 이달 안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될 것으로 보인다. 연명의료 중단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가진 뒤 2018년부터 시행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이보다 6개월 앞서 전면 제도화된다. 호스피스는 지금도 말기 암 환자에 한해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데, 2017년 6월부터는 대상자가 에이즈,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병변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질환으로 확대된다. 가정 호스피스도 본격화된다. 앞으로 2년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웰다잉법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일각에선 웰다잉법이 ‘환자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 짓도록 하자’는 법 취지를 제대로 지키며 시행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시행 과정에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없지 않다. 웰다잉에 대한 첫 입법이라는 ‘선언적 의미’에 치중한 나머지 일부 쟁점 사안은 향후에 다루기로 하고 넘어갔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 대상과 절차에서 특히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크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임종 과정의 말기 환자’로 정의했는데, 암 환자의 경우 큰 쟁점이 없다. 하지만 만성간경변이나 폐쇄성호흡기질환자 등은 말기와 경계가 모호해 ‘임종 과정’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게 의료 현장의 말이다. 법 통과 후 일선 병원에선 연명의료 중단 대상이 아니지만 식물인간처럼 ‘말기 경계’에 있는 질환자와 보호자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본인 의사 확인이 안 될 경우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가능토록 한 조항도 위험하다. 만약 가족들이 입을 맞춘다면 어쩔 것인가.
따라서 시행령이나 규칙 등 하위법령에 구체적 대상 기준과 절차 등을 명확히 담아놓지 않으면 생명 경시나 인간 존엄성 훼손 등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웰다잉법이 자칫 ‘현대판 고려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밖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표준 서식 및 등록 시스템 개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선정,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 확충 등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들에게 웰다잉법의 취지와 바람직한 ‘임종 문화’를 알릴 루트도 자주 마련해야 한다.
그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보건복지부는 실·국장급이 지휘하는 태스크포스(TF)를 하루빨리 구성해 일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년이란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웰다잉법이 정착되려면
입력 2016-01-14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