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상담하던 한 여성이 문득 이런 말을 하였다. “교수님, 정말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도대체 전혀 말이 안 될 때에요.”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우리가 진짜로 외로울 때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있지만, 정작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는 가장 고통스럽다. 그것은 함께 있지만 전혀 대화가 되지 않을 때이다.
가족은 우리에게 언제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따뜻함과 단단한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가장 아픈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크던지 작던지 수많은 상처를 겪게 되고 나름대로 해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받은 상처는 다른 어떤 상처 보다 더 아프고 독성이 깊다. 가족 안에서 받았던 상처가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는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하며 나머지 요소가 아무리 성공적이라도 한 가지만 어긋난다면 결혼은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만큼 가족의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찾는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심리상담의 영역 중에서 가장 치료가 어려운 분야가 사실 부부와 가족문제이다. 대부분의 부부와 가족의 문제는 한 가지가 원인이 아닌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꼬여있기에 개인상담 보다 훨씬 힘겨운 치료과정을 갖는다. 가족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고 가족 모두에게 아픈 상처를 일으키는 복잡하게 뒤엉킨 갈등의 실타래는 사실 가족 중 누군가의 개인적 성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가족 안에 존재하는 관계와 소통 방식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인 루만(Luhmann)은 사랑은 소통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고 아끼는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면 그에 걸맞은 소통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지만 정작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것은 다른 가족들의 정서와 생각을 이해하고 ‘역지사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 공감 있는 대화를 나눌 때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얼굴과 얼굴이 서로를 향할 때 가장 큰 기쁨을 얻는다. 가족들이 소통의 부족과 대화의 결핍을 호소한다면 이것은 단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은 우리에게 공감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공감 받았을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반면에 가장 상처받을 때 역시 내가 무언가 진지하게 말했지만 상대가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무시하는 표정을 지을 때이다.
공감을 하려면 상대방의 감정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특히 남편들에게 그게 쉽지가 않다. 사회생활하면서 감정을 사용하면 경쟁에 뒤처질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에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 일에 전념해 왔다. 문제는 집에 돌아가서도 직장에서처럼 감정을 억압하니 공감은커녕 같이 있어도 홀로 딴 세상을 산다. 공감은 자기감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먼저 심리적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자기감정을 허용하고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자기감정을 담담하게 인정할 때 물꼬가 트이고,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으로 공감을 시작할 수 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이해가 안 되면 아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잊고 있었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가족 안에 문제가 생겨 서로의 감정과 생각이 꼬일 되로 꼬였을 때 서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덮어 놓고 서로 용서하자, 화해하자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도 나처럼 외로웠구나’라고 공감해야 진정으로 용서도 하고 화해도 사랑 할 수 있다.
(한세대학교 심리상담대학원 교수)
◇약력 △연세대 대학원 △독일 본대학교(가족상담학 박사) △한세대학교 심리상담대학원 가족상담학과 교수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
[최광현 칼럼] 사랑의 또 다른 말, 공감
입력 2016-01-15 17:58